미국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 스위스, 홍콩 등에서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해 경기침체 우려를 고조시켰으나 저물가와 구조적 저금리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장단기금리 역전을 경기침체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금리 역전이 미중 무역전쟁 여파에 따른 경기에 대한 불안 심리를 키워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가능성이 있어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과 3개월물 금리가 5월 23일 이후 약 3개월 가까운 역전 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이달 14일 10년물과 2년물 금리도 일시적으로 역전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고조됐다. 10년물과 3개월물 금리 차는 23일 일시적으로 0.04%로 반전됐으나 24일부터 다시 역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장단기금리 역전에 시장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금리 역전과 경기변동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국금센터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장단기금리역전이 몇 개월 지속한 경우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특히 특히, 지난해 장단기금리 역전 문제가 처음 제기될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금리 역전이 이미 수개월째 이어졌고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주요국 경기도 둔화 흐름을 보이면서 장단기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14일 10년물과 2년물 미 국채금리 역전이 발생하면서 미국 증시는 3% 이상 급락했고 15일에는 30년물 국채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2% 밑으로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장단기금리역전은 금융기관의 신용 공급을 줄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 국채 10년물은 대출금리인 모기지금리 기준이 되고 2년물은 예금금리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장단기금리역전은 금융기관의 예대마진 감소나 손실로 이어져 신용 공급을 위축시킨다.
경기침체 예단 시기상조
국금센터는 ”과거 장단기금리 역전 배경과 현재 상황의 차이를 감안할 때 금리 역전이 반드시 경기침체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경기침체는 통화정책 긴축으로 단기금리가 크게 상승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장기금리는 미래의 단기금리 흐름과 물가에 대한 시장의 전망을 반영하고 단기금리는 단기적인 통화정책 스탠스를 반영한다. 연준이 물가상승이나 자산 가격 상승에 대응해 정책금리를 인상하면서 단기금리가 상승하고 그 결과로 경기침체의 우려가 커지면서 장기금리가 내려가 장단기금리 역전이 발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준은 이미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로 돌아서 단기금리가 크게 오를 수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물가와 금리 수준도 과거보다 크게 낮고 장기금리가 하락할 만한 구조적인 요인도 있다.
국금센터는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인구 고령화 등이 장기금리 수준을 낮추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금리 하락이 반드시 미래의 경기침체 위험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해석하기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준은 양적완화를 추진하면서 국채를 매입해 현재 2조 달러 규모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자넷 옐렌 전 연준의장도 장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며 장단기금리차를 경기침체의 신호로 보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진투자증권의 이상재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채권금리가 미국 경기에 대한 부정적인 우려를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셔 이론에 의하면 장기 시장금리는 실질 GDP 성장률을 의미하는 실질금리와 기대 인플레이션의 합이기 때문에 장기 시장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뺀 실질금리는 실질 GDP 성장률이 된다며 이를 산출하기 위해 10년물 미 국채금리 1.53%에서 브레이크 이븐 인플레이션레이트(BEI) 1.55%를 뺀 실질금리는 –0.0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전분기대비 연율 2.1%, 전년동기대비 2.3% 성장한 것으로 고려하면 시장의 불안 심리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7월 소매판매가 시장 예상보다 높은 전월비 0.7% 증가하면서 경조한 고용 지표를 바탕으로 양호한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채권시장의 경기침체 우려가 과도하다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국금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비교적 견조한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경기침체 가능성을 낮게 보는 해외 시각이 상당하다. 에버코어 ISI는 소비가 견조해 경기침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도 장단기금리 역전이 경기침체 시점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거의 없다며 경제지표를 고려할 때 경기침체보다 경기둔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우려는 남아
국금센터는 현재의 금리 역전이 과거와 다른 상황에서 발생해 경기침체를 예상하는 건 시기상조라면서도 미중 무역분쟁 등 새로운 위험요인이 잠재해 있는 가운데 연준의 대응 여력이 약해졌다는 점은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 평균 인하 폭은 5.3%p였던 반면 현재 연준의 추가 금리인하 여지는 2%p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국금센터는 특히 ”미중 무역 분쟁, 주요국 제조업 경기 악화 등으로 불확실성과 불안 심리가 고조되고 있고, 영국, 캐나다, 스위스, 홍콩 등 주요국의 금리 역전도 발생하고 있어 장단기금리 역전이 경기침체를 유발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작용할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재 이코노미스트도 ”미국 경제가 2020년 후반경에 침체로 반전될 수 있는 일부 조짐을 주목한다“며 ”미국 기업 GDP 계정상의 기업이익(재고 평가와 자본소비 조정 없는 세후 기준)과 비금융기업의 이익마진이 2014년 이후 큰 폭 하향 조정“됐다고 밝혔다.
올해 1분기 미국 기업이익은 당초 전년동기비 2.3% 증가에서 2.0% 감소로 4.2%p 하향 조정됐고, 비금융기업의 이익마진은 12.9%에서 10.7%로 낮아졌다.
그는 비금융기업 수익성이 비농업취업자 동향을 2분기 앞서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고려하면 ”2020년 후반경에 경기침체의 완성판인 고용과 소비의 악순환 적 침체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며 ”현실화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장단기금리 차의 경기침체 예고 여부도 “진행형”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보고서를 언급하며 이 보고서가 안도와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8년 이후 미국의 장단기금리가 역전된 시점은 1978년 8월, 1980년 9월, 1989년 1월, 2000년 2월, 2005년 12월 등 5차례다. 장단기금리 역전 후 미국 경제는 평균 15.6개월 후 경기정점에 도달했다. 금리 역전 후 S&P 500지수는 평균 12개월 후 정점에 도달했다. 최대 상승률은 25.4%, 최소 상승률은 11.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