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inWorld

인플레이션의 종말

물가 상승률 하락은 글로벌 수요가 위축되고 낙수효과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인플레이션 약화 현상은 글로벌 수요가 강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다. (사진: 아이스톡)

제 분야에선 아주 위험한 말이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확실한 종말을 보고 많은 사람이 이 말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부터 미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실상 사라졌다. 일본은행, 연방준비제도, 유럽중앙은행을 위해서 많은 중앙은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는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신기한 건, 일본의 실업률이 26년 이래 가장 낮고, 미국의 실업률도 근 50년 만에 가장 낮은데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417일자에서 자본주의가 인플레이션을 죽였나?”라고 물었다. 아시아 전역에 경제 불안과 더불어 인플레이션이 약해지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아시아에 좋은 소식이자 동시에 나쁜 소식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인플레이션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했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물가는 전년비 2% 이하로 오르고 있다. 2018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필리핀의 4월 물가 상승률은 3%를 하회할 전망이다.

한국의 물가 상승률 역시 근 3년래 최저 수준이며,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2.5% 아래다.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3월에 전년대비로 2.3% 오르는 데 그쳤다. 생산자 물가도 고작 0.4% 상승했을 뿐이다. 인도도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지 않는다.

일본은 2% 인플레이션 타깃의 절반도 채 달성하지 못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도 1.9% 올랐을 뿐이다. 작년 다수가 금리를 올렸던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이런 추세를 믿기 힘들 수 있다. 지난해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린 이유 중 일부는 통화 안정이었지만, 다른 일부는 인플레를 막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해,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인한 아시아 국가들이 받은 수출 피해로 통화정책이 다시 완화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애덤 스미스에서부터 밀턴 프리드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코노미스트가 물가 안정의 복음에 대해 설교해왔다. 이것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 투자하고 지출할 수 있는 견조한 성장과 자신감을 갖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취약한 글로벌 수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정책당국자들은 그런 경제 분위기를 꿈꿔왔다

하지만 안정적인 물가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그것이 글로벌 수요 약화로 인해 야기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한다.

가베칼 리서치(Gavekal Research)의 루이스 그레이브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없고, 중앙은행이 조만간 금리를 올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면서 대신 시장 상황은 우리가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경제 상태, 즉 골디락스로 복귀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주요국 증시는 10~20% 오르고 모든 주요국 시장의 장기 채권은 플러스 수익률을 낼 수 있었던 상황 배경에는 지난해 4분기에 인플레이션이 떨어져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비둘기파적으로 변할 여지가 생겼다는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아시아는 왜 지금의 상황을 걱정해야 할까?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나타난 전 세계적인 경기 반등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 취한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는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전반적 소득은 살아나지 못했다. 더군다나 정부들은 일반적으로 수요 진작의 책임을 중앙은행에게로 돌렸다. 따라서 경쟁력과 생산성 제고에 필요한 수급 상황의 개선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시아에게 안도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12개월 동안 이어진 무역전쟁으로 일어난 공급망에 교란으로 많은 국가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닜다.물이 가득 찬 수영장에서는 모두 우아하게 수영하지만,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벌거벗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워런 버핏의 말을 떠올리게 해줬다.

이번 상황이 과거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에게도 안도감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에서 지적한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417일자가 나왔을 때 일부에는 잡지 표지의 저주가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잡지 표지의 저주란 특정 인물, 기업, 상황을 좋게 포장한 잡지 표지가 등장하면 곧바로 지금까지와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의 종말에 대한 기사가 나왔으니 인플레이션 압력이 갑자기 커져서 글로벌 시장이 충격에 빠지지 않을지 우려했다.

위험한 안도감

제로 헤지(Zero Hedge)의 애널리스트들은 오늘날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둘러싼 과도한 안도감은 고전적 반전 신호’(contrarian signal), 수개월 내에 인플레이션(내지 최악의 경우 초인플레이션)이 추악한 고개를 들기 시작할 것임을 신호한다라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의 지적이 옳았을 수도 있다. 지난 20년 동안 이어온 일본의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을 봐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은행은 1999년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 부근으로 유지해왔다. 가끔은 그 아래로 내리기도 했다. 다시 성장이 시작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일련의 개혁 조치에 착수했지만, 일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구조적 개혁보다 통화 부양책에 의존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선순환적 리플레이션(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심한 인플레이션까지는 이르지 않은 상태) 주기를 일으킬 수 있게 임금을 올려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 금리 인하나 1.5조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 조치 어느 것도 국민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모두 낙수 경제’(trickle-down economics)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입증해주고 있다. 낙수 경제란 대기업의 성장을 장려하면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총체적으로 경기가 부흥한다는 주장이다.

이 모든 결과는 글로벌 성장에 편승해서 정상적인 가격결정력을 회복할 수 있는 아시아의 능력을 해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플레이션 약화로 오늘날 전 세계 경제의 이례적인 동시 회복이 과거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Asia Times Financial is now live. Linking accurate news, insightful analysis and local knowledge with the ATF China Bond 50 Index, the world's first benchmark cross sector Chinese Bond Indices. Read ATF now.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