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좌측 두 번째)이 3월 26일 엘리제 궁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메르켈 독일 총리(우측 두 번째)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우측),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AF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방문해 600억 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번 유럽 방문을 통해 중국이 얻은 경제적 성과는 이런 수치를 뛰어넘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압력이 이어지고 최근 EU가 중국을 “체제 라이벌”로 지목했으나,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결정했고, 유럽연합의 참여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5일 파리에서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는 시 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과의 회담이 끝난 후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일대일로 사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확실한 호혜(reciprocity)에 이르기를 바란다. 아직 약간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채의 덫?

일대일로 사업은 아시아와 유럽의 도로와 철도, 항로를 연결하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 사업이다. 일각에서는 일대일로가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같은 나라를 부채로 옭아매는 사업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지난주 이탈리아가 우방국인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우려에도 EU 회원국과 주요 7개국(G7) 중 처음으로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ECFR(European Council in Foreign Relations) 로마 사무소의 테레사 코라텔라는 “한편에는 (일대일로 참여를 추진하는) 오성운동이, 다른 한편에는 (일대일로 참여를) 매우 망설이는 집단이 있었다. 반대파의 지도자 마테오 발비니가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오성운동은 지난 2009년 창당된 이탈리아의 집권당이다.

하지만 공정한 시장접근 등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풀어야 할 난제가 남아있다. 아직 논란이 남아 있다는 메르켈 총리의 언급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융커 위원장은 일대일로 사업 참여 합의는 유럽 기업에 “중국 기업과 동등한 정도의 시장접근”이 보장돼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유럽의 요구가 실현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1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중국과 공정한 경제 관계를 맺기 위한 10개 항목의 실행 계획을 공개했다. 이 실행계획에는 중국의 유럽 투자 계획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고, 중국을 “기술적(technological)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로 지목하고 있다. 유럽의 단일한 대중국 정책 수립을 위한 이 실행계획은 이달 21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논의됐다.

이 실행 계획은 중국에 대한 유럽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나 중국의 동유럽 투자에 대한 유럽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이 제시한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에 대한 우려가 크다.

EUISS(European Union Institute for Security Studies)의 아시아 지역 분석가 에바 페조바는 “다수의 유럽인이 동유럽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반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모호한 입장

중국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은 불공정한 시장 접근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이달 15일 베이징의 유럽상공회의소는 중국의 투자법안이 모호한 문구를 담고 있어 법적인 불확실성을 더 키웠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21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중국 문제는 브렉시트 조건과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노딜 브렉시트”는 아일랜드와 같은 영국의 주변국뿐 아니라 독일 자동차 업계 등 유럽 대륙의 일부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할레경제연구소(Halle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와 마틴루터 대학의 공동 연구 결과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독일은 1만5000개의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지난 2017년 기준으로 대중 수출이 전체 수출의 7%를 차지하는 독일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처지다.

ECFR의 코르텔라는 “시 주석이 유럽에서 입지를 넓히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잡음 뿐 아니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권좌에서 내려올 조짐이 보이고 5월 유럽연합 의회 선거가 열린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유럽이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시 주석의 유럽 방문을 주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85조 달러에 육박하는 전 세계 GDP 중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의GDP가 57조2000억 달러를 차지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유럽연합의 교역 상대국이다.

하지만 3대 거대 경제권의 통상 분쟁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유럽에 대해서도 농산물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며 통상 압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특히 화웨이의 스파이 혐의를 거론하며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를 사용하는 나라와 정보 공유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미국의 이런 경고가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독일이 미국의 이런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6일 “회원국들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업을 시장에서 배제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으나 유럽연합의 통일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한편 시 주석은 이탈리아와 일대일로 사업 참여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프랑스에서는 에어버스로부터 A320s 290대, A350 10 등 300대의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중국 원자력발전소 건설 참여와 프랑스산 쇠고기와 냉동 닭 수입 등을 포함해 총 400억 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에 합의했다.

화웨이 사태에 대해 서방 세계가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오는 4월 9일 열리는 유럽연합-중국 정상회의에서 유럽이 공통된 대중국 정책에 합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탈리아가 이미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결정했고, 메르켈 독일 총리도 25일 유럽연합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 가능성을 열어 놓은 발언을 했다. EUISS의 페조바 분석가는 “시 주석의 유럽 방문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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