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AFC 회장. 사진: AFP

하킴 알-아라이비 바레인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의 체포와 석방을 둘러싸고 커진 논란이 셰이크 살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의 자격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살만은 아시아 축구계를 이끄는 인사로서 연맹 내 모든 선수들의 인권 등을 보호하기 위해 애써야 하나, 협회장 보다 바레인 왕족의 일원으로 행동함으로써 구설수에 올랐다.

사연은 이렇다. 알-아라이비는 작년 11월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을 받은 태국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2012년 바레인 왕실의 스포츠 관련 비리를 폭로했다가 바레인 당국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으나, 2014년 호주로 피신한 뒤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호주 지역 리그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정착했다. 하지만 바레인은 알-아라이비가 2012년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기물을 파손했다며 궐석재판을 거쳐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적색수배를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그의 체포 소식을 들은 바레인은 즉각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으나 호주 정부는 물론 국제인권단체,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 사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태국 법원은 이번 달 11일 그의 석방을 명령했고, 그는 호주로 돌아왔다.

알-아라이비는 바레인으로 송환되면 자신은 고문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바레인 정부가 자신의 송환을 요구하는 진짜 이유는 기물파손이 아니라 자신이 2011~12년 아랍의 봄 당시 민주주의를 요구한 운동선수들의 체포에 관여한 살만을 비난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신빙성을 입증하듯, 살만은 그를 바레인으로 소환해 달라고 태국 측에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레인 축구 선수 알-아라이비. 사진: 페이스북

실제로 2012년에 200명이 넘는 축구 선수와 다른 종목 운동선수들이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뒤 체포, 심문, 고문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바레인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살만은 자신이 당국의 선수 색출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알-아라이비가 호주로 돌아오는 데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크레이그 포스터의 도움이 컸다. 2018년 호주축구연맹 이사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던 포스터는 알-아라이비 사건을 계기로 축구계 지도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방콕에서 알-아라이비를 만난 뒤 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본사를 찾아가 그의 석방을 위해 FIFA가 애써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포스터는 <아시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젊은이의 인생이 위기에 빠졌었다”며 “FIFA의 윤리강령이나 관리기준이 완전히 엉터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2016년 2월 26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총회 때 시위대가 바레인반정부 시위 희생자들의 얼굴이 찍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AFP

그는 “2011-12년 일어난 선수 탄압과 알-아라이비 선수의 체포와 바레인 송환 문제 개입과 관련해서 살만 회장이 답해야 할 크고 중요한 의문들이 많다”고 말했다.

AFC는 알-아라이비가 수감되어 있던 67일 동안 줄곧 침묵으로 일관했다. 1월 29일 그의 체포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분노가 들끓자 프라풀 파텔 부회장이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게 AFC의 공식 입장 표명의 전부였다. 반면 태국에서 풀려난 알-아라이비가 호주로 돌아오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그를 직접 만나 환영의 뜻을 전달하면서 이번 사건이 미칠 심각한 외교적 파장을 강조했다.

1월 AFC는 살만이 본 사건에 개입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금까지 이해상충 문제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사안에 개입한 적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그에 대한 비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중동 축구 정치 전문가인 제임스 도시는 살만이 이번 사건에서 발을 뺌으로써 아랍의 봄 동안 자행된 억압에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태도는 살만이 2011년 바레인 민주화 시위 때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선수와 스포츠계 인사 처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벗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살만이 2013년 AFC 회장이 되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한 철저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혐의에서 벗어난 뒤에야 회장 취임이 허용됐어야 한다고 믿는다.

2016년 2월 26일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한 살만이 FIFA 특별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사진: AFP

포스터 등은 살만에 대한 새로운 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4월 6일 그의 AFC 회장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살만은 FIFA 수석부회장으로, 2016년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지아니 인판티노 현 총재에게 패했다. 그가 4월 열리는 AFC 회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한 알-아라이비 사건과 그것이 일으킨 세계적 분노가 아시아 축구계를 이끄는 AFC 지배구조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도르시는 “알-아라이비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연줄을 가진 인물들뿐만 아니라 국가, 지역 또는 세계 스포츠계를 지배하는 통치가문 일원을 둘러싸고 자격 시비가 일어났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아시아 축구계 고위 인사들의 일방적 강요에 저항하는 움직임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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