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전시회는 사람들로부터 좀처럼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등과 패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
팔레 갈리에라(Palaisi Galliera) 패션 박물관 주최로 열린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은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마네킹을 만나게 된다.
큐레이터들은 이 전시회의 개최 목적 중 하나는 여성들이 몸에 붙이는 복잡한 잠금장치들이 종종 복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역사를 통해 등과의 관계를 탐구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이트 재킷을 제외하고, 어떤 남성복 아이템도 등을 잠근 적이 없다. 하지만 여성의 옷은 종종 그럼으로써 여성을 의존적인 위치에 놓았다는 것이다.
11월 1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큐레이터인 알렉산드르 샘슨은 “해부학적으로 봤을 때 몸은 양팔을 뒤로 완전히 젖힐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면서 “등을 묶는 건 부자연스럽다”라고 말했다.
등을 묶는 역사
15세기 말에 모든 사회 계층의 여성 등에 레이스가 등장했다. 하지만 하녀의 도움을 받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농민 여성들은 오빠, 남동생, 아버지, 남편의 도움을 받아 레이스를 묶어야 했다.
18세기에는 호크 단추 잠금 방식이 등장했고, 레이스로 배와 허리둘레를 졸라매 체형을 보정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착용하는 여성용 속옷 코르셋(Corset)은 19세기에 첫선을 보였다.
20세기에 프랑스의 패션계의 거장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Paul Poiret, 1879~1944년)가 여성들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상의 윗부분에 단추 한 개를 달아 단추 하나만 풀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그때조차 레이스와 잠금장치로부터 여성의 해방은 매춘의 의미를 풍기는 것처럼 여겨졌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마국의 사교계 명사인 리타 드 아코스타 리딕(Rita de Acosta Lydig)이 소박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등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보다 최근인 2018년 6월에도 이런 ‘등 노출 스캔들‘이 일어났다. 미국 영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있는 불법체류자 자녀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그랬다. 그녀가 입은 파카 등에는 “난 정말 관심 없어, 당신은?”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14미터 길이의 트레인
역사적으로 부유한 여성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그들 뒤에 끌고 다니는 ’트레인’(train)의 크기였다. 트레인은 정장 드레스의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을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13세기부터 시작됐다. 당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1729~1796년)는 1762년 대관식 때 14미터나 되는 트레인을 끌고 나타났다. 하인 12명이 이 트레인을 들어줬다.
현대에 와서 등은 종종 가방을 통해 눈에 띄고 있다. 1968년 에르메스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1970년대 후반 프라다가 나일론 치장을 하면서 비로소 소박한 배낭은 학교와 군대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대부분의 패션쇼 사진에는 등이 나오지 않는다. 박물관 한쪽 복도에는 파리 패션위크 사진 3,607장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옆이나 뒤에서 찍은 사진은 없다.
전시회 주최자 측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사람들의 얼굴에 집착하는 반면, 등은 우리의 한계를 더욱 일깨워준다고 한다.
샘슨은 “등은 우리 자신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있는 우리 몸의 유일한 일부다”라면서 “등은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연상시키는데, 인간은 그런 느낌을 싫어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