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로이터)
지난 5월 미중 무역전쟁이 악화하면서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무역전쟁의 당사국 통화인 위안화보다 원화가 더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원화의 급격한 하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달러가 지난해 4월부터 강세를 보였으나, 원화는 약세를 보였던 다른 통화와 달리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타결 전망이 우세했던 미중 무역전쟁이 5월부터 악화한 가운데, 1분기 GDP 마이너스 성장, 북핵 리스크 재부상 등 부정적인 재료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원화가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원화가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로 인식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5월 이후 원화가 위안화보다 더 크게 하락하면서 프록시 통화라는 평가가 더욱 부각됐다.

수출 주도형으로 성장한 한국 경제는 여전히 대외 여건 변화에 취약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부상했고, 중국은 한국 부품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양국이 밸류체인으로 강하게 묶이면서 원화와 위안화의 동조화 현상을 불러온 기본적인 요건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원화를 통한 환위험 헤지가 위안화를 통한 헤지보다 수월하고 비용도 적게 드는 여건이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실제로 위안화 자산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위험을 헤지할 때 원화 파생상품을 통해 헤지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전했다.

수월한 원화 헤지…프록시 현상 가속화

한 시장 전문가는 20일 Asia Times와의 전화통화에서 ”시장 참가자들이 거래하다 보면 암암리에 이런 거래가 파악되고 그런 사례가 전해진다“며 ”달러/원 NDF 시장 유동성이 풍부하다 보니 위안화 자산에 투자하면서 원화로 헤지를 하는 사례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식 투자자들은 환헤지를 많이 안 하기 때문에 주로 중국 채권 투자자들이 이런 헤지 거래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채권 등 위안화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달러를 위안화로 환전해야 한다. 위안화 자산을 매입하는 즉시 투자자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자산을 매도하는 시점에 매수 시점의 환율로 다시 달러를 사겠다는 선물환 거래나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를 하면서 환위험을 피하는 헤지 거래를 한다.

그런데 위안화 선물환이나 NDF로 헤지를 하기에는 유동성이 부족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원화는 위안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헤지가 더 쉽고 비용도 적다. 그러다 보니 위안화 자산을 매입하는 투자자들이 달러/원 선물환이나 NDF로 헤지를 한다는 얘기다.

NDF는 만기에 계약 원금을 교환할 필요 없이 선물환율과 현물환율 간의 차액만을 결제하는 선물환계약이다. 반면에 선물환은 만기에 현물환을 약속한 환율로 매매한다는 계약이다, 환율 변동성을 헤지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NDF는 현물환 거래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물환과 차이가 있다.

다른 시장 전문가는 Asia Times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DTCC(The Depository Trust & Clearing Corporation)의 자료를 보면 전 세계 통화 NDF 거래량 중 원화 NDF가 20% 정도, 위안화 NDF 거래량은 5%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위안화 NDF가 원화 NDF보다 거래량이 적은 이유는 원화와 달리 위안화는 역외(해외에서)에서 현물환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화의 경우 서울 외환시장을 제외하면 중국에 개설된 위안/원 시장이 현물환 거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시장에서도 달러/원은 거래를 할 수 없고 위안화와 원화 간 거래만 가능하다. 역외에서 원화를 달러화와 거래할 수 있는 수단은 NDF뿐이다.

반면에 위안화는 홍콩 시장에서 24시간 현물환을 거래할 수 있다. 위안화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원화 자산 투자 수요보다 많아도 원화 NDF 거래가 위안화 NDF 거래보다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동성이 풍부하면 호가가 촘촘하게 형성돼 원하는 가격대의 거래 상대방을 찾기가 수월하다. 환위험 헤지가 수월해지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 전문가는 ”위안화 자산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이 헤지 수단이 없어서 원화로 하는 건 아니다“며 ”접근성과 비용을 고려할 때 원화가 편리하다“고 말했다.

선물환 거래에서도 중국 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지 않아 거래도 적고 유출입이 원활하지 않아 달러/원 선물환이 유동성이 더 풍부하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하지만 선물환은 현물환 거래를 수반하기 때문에 한국에 투자계정을 보유한 외국인이 아니면 위안화 헤지를 위한 달러/원 선물환 거래에 나서기 어렵다.

원화가 위안화보다 정책 리스크가 적다는 점도 원화를 통한 헤지를 늘리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문가는 ”위안화는 아무래도 당국의 입김에 원화보다 훨씬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통화다. 원화가 훨씬 예측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원화 헤지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중 양국 경제의 연관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원화와 위안화의 동조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완화하거나 극적인 타결에 이르게 된다면 원화가 달러화보다 빠르게 절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외환당국이 한국 외환당국 보다 환율 관리에 더 적극적이기 때문에 원화와 위안화가 약세를 보일 때 원화 하락 폭이 컸지만, 같은 이유로 미중 무역전쟁이 완화되는 양상이 나타나면 원화가 더 큰 폭으로 절상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간밤 역외시장에서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1171.35원으로 0.3% 상승했으나, 위안화는 6.9036 위안으로 0.01% 하락했다.

원화가 위안화 프록시 통화라는 얘기도 동조화와 함께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 자본시장이 발전한다면 이런 현상이 약화할 수 있다.

앞의 시장 전문가는 ”중국 자본시장 개방이 가속화하면 위안화 선물환 거래 수요 등도 늘어나면서 헤지가 더욱 수월해질 전망“이라며 ”따라서 중국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더 발달하면 원화의 위안화 프록시 현상도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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