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로이터)

미국 상무부는 핵심 부품 공급을 제한하기 위해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한 후 해외 일부 기업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발표했으나, 한국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거래제한 기업이나 품목이 거론되지 않는다.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해당 기업이나 제품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제재 대상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워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의 거래제한 조치가 나온 후 퀄컴과 구글,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미국 기업과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도 미국 기술 사용을 이유로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Asia Times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특정 기업을 수출통제 리스트에 등재하면 미국 법상 그 기업에 대해 특정 조건에 맞는 제품을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제재를 받는다”며 “기본적으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재지만 미국산 제품뿐 아니라 외국 기업이 미국산 제품이 25% 이상 사용된 제품, 특정 미국 기술이나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제품을 수출할 때도 제대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화웨이와 거래 중단에 나선 기업은 주로 미국 기업이다. 퀄컴 등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대만의 TSMC는 일단 중국과의 거래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도시바는 지난 5월 화웨이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나, 그날 바로 공급을 재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재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업체 중 하나가 TSMC”라며 “일단 TSMC도 거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는 다르다. 현재로서는 거래를 계속하겠다는 정도의 의사 표명”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의 다른 관계자는 “화웨이 거래제한 대상 여부는 일차적으로 기업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화웨이와 거래를 계속했는데, 추후 제재 위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다만 “기본적으로 화웨이 거래제한은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이고 이란이나 북한 제재와 같은 유엔 제재가 아니라 미국의 단독 제재”라며 “미국이 다른 나라 기업의 위반 행위에 대해 얼마나 엄격하게 제재를 가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통인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현재로서는 미국의 협조 요청만 나오고 구체적으로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발표한 기업이 없는 걸 보면 해당 기업이나 제품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추정일 뿐 누구도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화웨이 장비 사용은 다른 문제…제재 대상은 아니다.

미국은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뿐 아니라 화웨이가 생산하는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동맹국을 압박하고 있다.

화웨이 장비 사용은 화웨이 거래제한과는 다른 문제다. 거래제한 조치는 해당 기업이 이를 어기면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되지만, 화웨이 장비 사용은 직접적인 제재의 대상은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화웨이 거래제한 조치는 화웨이에 부품 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라며 “화웨이 제품이나 통신장비를 구매하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며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LGU플러스도 거래제한 조치 대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우방국에 통신 보안 문제를 거론하며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어 LGU플러스는 미국의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5일 페이스북코리아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5G 네트워크상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며 “단기적인 비용 절감은 솔깃할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를 선택하면 장기적인 리스크와 비용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부, 보안은 철저히…거래 여부는 기업이 결정해야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화웨이 문제와 관련 지난주 Asia Times 기자에게 “화웨이와의 거래 여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통신 보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다.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정부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분명하게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반면에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되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Asia Times 기자에게 “정부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기업들에 더욱 분명한 지침을 주거나, 그게 어렵다면 활발하게 정보 수집에 나서 기업들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전직 고위 관료는 “LG유플러스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 정부가 나서면 소송에 걸릴 수도 있다. 정부도 기업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무역전쟁이 현재 악화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상황이 뒤바뀔지 모르는데 정부나 기업이 미리 어느 편에 설지 정해 버리면 나중에 우스운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도 “어느 쪽으로 입장을 정하라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며 “미국도 극단적인 편 가르기로 판을 몰아가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극단까지 몰아붙였는데 동참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면 미국이 체면을 구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중 양국이 타협 불가능한 수준의 무역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면 한국 기업은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큰 시장이긴 하지만 원천 기술 의존도 등을 고려할 때 많은 기업이 결국 미국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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