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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죽음’ 예언이 마침내 실현되는 걸까?

홍콩 시민들이 6월 12일 정부청사 인근에 모여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AFP)

홍콩의 죽음에 대한 ‘포춘’지의 예언이 마침내 실현되는 걸까?

1995년 6월, 2년 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미국의 ‘포춘’지는 ‘홍콩의 죽음’을 예언하는 표지기사를 게재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세계에서 가장 친기업적인 홍콩 경제가 무너질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이 불길한 예언은 어긋난 것처럼 보였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조류 인플루엔자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의 위기를 모두 극복해내며 오히려 영국으로부터 주권이 반환되던 1997년 이전보다 경제에 더 활력이 넘친다는 소리마저 들었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일어난 범죄인 인도 법안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보면, 20년 전 <포춘>지의 예언이 뒤늦게나마 적중하게 되는 건 아닌지 궁금하게 만든다.

중국 반환 후 경제적 번창 불구 정치 불안 시달린 홍콩

경제적으로는 번창했을지 몰라도 홍콩은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야 했다. 2003년 일어난 국가보안법 제정 반대 시위가 그런 저항의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홍콩 정부가 제정하려고 했던 홍콩판 국가보안법인 ‘기본법 23조’ 내용이 지나치게 모호하자 언론자유와 투명성이 상실될 것을 두려워한 언론인과 금융인이 함께 저항했고, 중국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 후로도 중국은 학교들에 친중국적 가치를 가르치도록 요구하고, 홍콩 언론사들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금지도서를 판매한 서적상들이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79일 동안 벌인 대규모 도심 시위인 ‘우산혁명’은 홍콩 시민들이 자국 지도자를 뽑기 어렵게 만든 중국 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범죄인 인도 법안은 지금까지 중국이 취했던 어떤 정치적 간섭보다 더 파급력이 강해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황금 거위’ 역할을 하는 홍콩 경제를 망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제대로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6월 4일 열린 천안문 민주 항쟁 30주년 추모 집회에 홍콩 시민들이 최대 1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 AFP)

미국의 리서치회사인 가베칼 리서치의 사이먼 프리처드는 이렇게 말했다.

“홍콩이 ‘황금알을 낳은 거위’라는 사실이 자유방임주의자들을 오랫동안 위로해 줬다. 사실 홍콩은 중국에 자본과 기업가적 노하우를 제공했다. 이후 중국을 세계로 이어주는 통로, 즉 경제 배관 역할을 했다. 홍콩이 자본 흐름의 ‘녹색 지대’로 남을 것이라고 여길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법적 독립성 훼손뿐만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부상을 가능케 하는 홍콩의 역할에 대해 미국이 느끼는 불안감은 홍콩이 서 있는 특별한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와일드카드 미국
 
미국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에서 홍콩 경제는 이미 부수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 홍콩을 중국과 별개의 독립국으로 보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은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을 압박해 중국에 부담을 주려고 한다는 걸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중국파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중국 정부가 원하는 어떤 홍콩인도 체포할 수 있게 해주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를 포함한 홍콩의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700만 홍콩 시민보다 중국 공산당에 대해 오히려 더 조심해왔다. 그러나 람 장관이 공산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애써온 것도 역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홍콩의 위기가 싱가포르에게 기회

홍콩의 정치 불안으로 싱가포르가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커졌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다국적 기업들을 위한 아시아 최고의 비즈니스 허브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모두 낮은 세금, 최소한의 규제, 자유로운 비자 정책, 그리고 사업하기 쉬운 환경 조성을 위해 힘써왔다.

1997년 홍콩 반환 시 중국이 홍콩으로부터 배우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지나면 중국이 홍콩의 법치주의, 무제한적 자본 흐름, 활기찬 자유 언론을 모방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 홍콩으로부터 배우기보다는 홍콩을 중국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과 관련된 예상이 빗나간 적이 자주 있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자 중국 경제가 서구화할 것으로 널리 예상됐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으로 끝났다. 인터넷이 중국을 민주 열강 대열에 밀어 넣을 거란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공산당은 자기 마음대로 사이버 공간을 리메이크했다. 이제 홍콩 차례다.

범죄인 인도 법안 통과되면 중국 입맛대로 법 적용될 수도

범죄인 인도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에서 활동하는 세계 최대 기업 경영진이 중국의 변덕스러운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이 정치적 이유를 들며 밤에 기업인을 체포해 본토로 데려갈 가능성도 있다. 임의로 기업에 범죄 혐의를 덮어씌울 수도 있다. 모호한 범죄인 인도 법안 때문에 빚어질 수 있는 걱정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12일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를 해산시키려고 하고 있다. (사진: AFP)

헤지펀드가 중국과 정치적으로 깊이 연루된 회사 주식을 매도해서 피해를 주면 어떻게 될까? 그런 기업이 저지른 사기를 들춰낸 연구원은? 혹은 경제학자가 중국의 경제 지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해서 중국 관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다.

2003년 사태는 중국이 홍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뭔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줬다.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국 정부가 이후 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홍콩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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