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사진: AFP)
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전통연극인 가부키(歌舞伎) 팬은 아니다. 하지만 금주 그는 일본과 무역협상을 벌이면서 가부키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1막 공연은 월요일과 화요일 양일간 미국 수도에서 펼쳐졌다. 그곳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협상단은 원칙적으로 무역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여러 가지 스캔들을 지워낼 세계 무대에서의 승리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은 친구인 아베 총리가 그에게 커튼콜(연극이나 음악회 따위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보내는 찬사)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미국이 일본 측 협상 대표인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상으로부터 기대하는 게 바로 이런 역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미국의 뜻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측 협상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신중하게 협상에 임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가부키에선 반전과 숨겨진 동기로 극의 줄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이번 미일 간 협상에서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아베 총리의 협상팀은 대본을 가슴속 깊숙이 숨겨놓고 있는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이 1년 전에 비해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몬테기 경제재생상이 16일(현지시간) 밤 워싱턴에서 기자들에게 말했듯이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양국이 전자상거래를 포함한 디지털 무역과 농산물 등에 대해 협상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온 게 전부다.

그렇지만 몬테기 경제재생상이 협상에 여유를 보이느냐 여부가 정말로 중요하다. 미국은 그런 모습을 보길 원하진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무역전쟁

최근 나온 일본의 경제지표를 봤을 때 일본이 예전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3월 일본의 수출은 전년동월대비로 2.4% 감소하면서 4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대형 수출업체들의 분기 업황심리도 6년래 가장 나빠졌다. 제조업 활동도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이 일본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걸 드러내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5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 부과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두 가지가 바뀌었다. 하나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지만 일본은 계속 남아 있다는 점이다. TPP에 따라 일본은 농산물 시장을 개방했다. 예를 들어, 수입산 냉장 소고기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38.5%에서 27.5%로 내렸고, 9%로 더 내릴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또한 유렵연합(EU)과 장시간 이어온 협상을 타결지었다. 그로 인해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더 편하게 무역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일본 시장 접근을 확대하기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TPP에 다시 가입해야 한다. 아베 총리의 협상팀은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그렇게 하도록 유도해왔다. 재가입 명분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은 올해 지금까지 미국의 대일 돼지고기 수출이 35%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TPP 회원국들로부터 일본산 소고기 수입량은 급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보리 재배 농부들은 일본과 계약이 끊기고 있다. TPP를 ‘트럼프-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ump-Pacific Partnership)으로 개명하면 미국이 다시 가입할지도 모른다.

이 덕에 일본은 더 큰 협상력을 갖게 됐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특히 더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관련 조사 등으로 인해 자국 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따라서 그에겐 조속한 승리가 필요하다는 점이 아베 총리에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약화된 요구

두 번째 일어난 변화는 중국이 미국의 협상팀보다 한 수 앞서게 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업계 보조금 축소 요구 수위를 낮추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개월 동안 이어온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모호한 약속만 발표하면서 끝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미국산 제품 수입 물량을 늘리고,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더 노력하며,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을 자극하지 않게 ‘중국 제조 2025’(중국이 제조업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추진 중인 10대 핵심 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개명하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몬테기 경제재생상은 이런 모든 점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80억 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무역흑자를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중서부 농부들이 쏟아내는 무역전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듣고 있다. 다음엔 미국 소비자들이 그를 공격할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줄이는 데 중점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2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미국의 중산층 소비자들은 자국산 자동차보다 연비와 품질이 좋은 일본산 자동차 구매에 더 부담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통상적인 무역 이슈를 넘어 환율 문제까지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태세다. 미국은 일본이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엔화 환율을 낮추는 환율 조작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몬테기 경제재정상은 엔화 문제와 관련 가부키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는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30여 년 전 일본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미국의 엔화 절상 요구를 수용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잘못을 되풀이하길 원하지 않는다.

물론 가부키는 섬세한 공연이다. 아베 총리도 그렇게 섬세한 동작을 연출해야 한다.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트위터 공격을 받지 않고 최대한 공연을 잘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쉽게 협상을 타결해줄 거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극의 줄거리를 놓친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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