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이 몰리는 터키 이스탄불의 도로에 보기 흉한 장면들이 자주 목격된다. 이웃 시리아의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몰려든 시리아 난민 고아들이 접착제를 흡입하며 환각 상태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이곳에선 낡은 옷을 입고 맨발 차림의 소년들이 소위 ‘플레임’(the flame)이라는 접착제를 들이마신 후 길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소년들은 가끔 그들의 유일한 소득원인 휴지나 병 묶음을 팔려고 애쓴다. 팔 물건이 없어서 지나가는 행인을 따라다니며 돈과 도움을 구걸하기도 한다.
바다에서 잃어버린 엄마
올해 10살의 오마르와 15살인 형 알리는 원래 시리아 북부 알레포(Aleppo) 출신이다. 형제는 2016년에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던 도중 바다에서 어머니를 잃고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다행히 구조돼 터키로 보내졌지만 터키에선 그들을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 형 알리에 따르면 형제는 이스탄불 거리를 배회하다 폭력배들에 의해 앵벌이로 내몰렸다. 2014년 폭탄 공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알리 가족은 터키와 유럽에서 안전한 삶을 꿈꾸며 시리아를 탈출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익사해 숨진 후 형제는 고아원에 맡겨졌다.
Asia Times 기자를 만난 알리는 “우리는 그곳에서 나이든 시리아 형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동생과 함께 도망쳐야 했다. 우리는 이즈미르에서 구걸을 시작하다가 만난 아이와 함께 이스탄불로 향했고, 이곳에서 구걸하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접착제 흡입
형제는 다른 집 없는 고아들이 흡입하는 모습을 보고 플레임 흡입을 시작했다. 플레임은 길거리 아이들이 강력한 접착제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다. 아이들은 플레임을 비닐봉지에 짜 넣은 후 흡입한다. 작은 튜브에 들어간 접착제 가격이 1리라(210원)밖에 안 되고, 큰 병에 든 것도 4리라에 불과하다. 또한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연령대에 상관없이 누구나 합법적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것은 고통스런 현실 속에 갇힌 많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완벽한 탈출구를 제공해주는 물질이다.
알리는 플레임을 흡입하면 겨울 혹한과 배고픔과 엄마의 죽음 이후 겪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형이 흡입하자 곧바로 동생 오마르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임 흡입을 시작했다. 오마르는 “형이 플레임을 흡입하는 걸 보고 처음에는 말리려고 했지만 나중에 나도 흡입해보고 싶어졌다”며 “흡입해보니 행복해져서 지금은 플레임을 흡입하지 않으면 일과를 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플레임을 흡입하다가 가끔 심한 기침을 하기도 하지만 곧바로 기침이 잦아든다고 덧붙였다.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는 의사 모하메드는 플레임 같은 용제를 흡입하면 뇌에 산소가 급격히 줄어들어 뇌세포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고 경고한다. 플레임을 흡입하면 곧장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다가 다시 현기증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균형을 잃고, 어지럼증을 느끼고, 색깔과 소리와 모양을 왜곡해 인식하며, 환각 상태에 빠진다. 이런 상태는 흡입량에 따라 보통 15분에서 45분 정도 지속되지만, 간헐적으로 흡입을 지속할 경우 최장 몇 시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뇌에 유입되는 플레임의 양이 늘어날수록 의식을 잃는 속도가 빨라진다.
단기적으로는 플레임이 심각한 기침, 두통, 헛구역질을 유발할 수 있다. 이것을 장기간 계속해서 흡입하면 질식이나 심지어는 죽음에도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플레임에 중독되면 건강 상태는 심각하게 나빠질 수밖에 없다.
다른 화학 용제들과 마찬가지로 접착제에는 신경계를 순식간에 파괴시키는 독성 물질들이 들어있다. 흡입 순간 이 물질들은 빠르게 뇌로 퍼지면서 뇌세포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심각한 피부염을 일으키고, 호흡기관의 기능도 떨어뜨린다.
1시간 동안의 행복
터키 내 시리아 고아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수가 수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은 족히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7세의 사에드 역시 시리아 알레포 출신이다. 그는 전쟁을 피해서 이웃 친구와 함께 터키로 왔다. 그는 터키에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줄 계획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함께 터키로 온 그 이웃 친구가 돈을 빼앗아 달아나는 바람에 사에드는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사에드는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터키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시작했다.
그 역시 6개월 전부터 플레임 흡입을 시작했고, 지금은 그것이 일상이 됐다. 그는 구걸을 하기 전과 후에 플레임을 흡입한다. “플레임을 흡입하면 의식을 잃는다. 가끔은 두통도 느끼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사에드는 구걸을 마친 후 ‘1시간만’이라도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서 플레임을 흡입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