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새벽. (사진: 아이스톡)

홍콩 통화당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 달러에 대한 홍콩 달러 환율을 달러 당 7.75~7.85홍콩달러로 유지하는 일이다.

이런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 홍콩 당국은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최근 홍콩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환율 방어를 위해 홍콩 달러를 대규모로 매수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HKMA는 이달 들어 총 74억 홍콩달러(1조600여 억원)을 매수했다.

홍콩은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 4300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고 있다. 이는 홍콩의 연간 GDP 3650억 달러를 초과하는 규모다.

통화당국의 외줄타기

홍콩 당국의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과 함께 페그제에 대한 해묵은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홍콩달러 약세의 주요인은 홍콩의 금리 인상 속도가 미국보다 늦기 때문이다. 홍콩 경제는 부동산 시장과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입게 되고 부동산을 보유한 재계 거물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베이징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다.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부정하게 벌어들이거나 그렇지 않은) 돈을 홍콩으로 빼돌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홍콩의 지도자들은 중국 정치인들이 손실을 입고 화를 내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페그제는 이제 유용성을 잃었다. 경제에 도움 보다 부담이 되고 있다.

페그제는 지난 1983년 도입됐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를 제외하고 꾸준히 유지됐다. 지난 2005년 홍콩 당국은 환율 변동 허용 폭을 다소 넓히면서 현재의 7.75-7.85 달러 페그가 도입됐다. 하지만 변동 폭이 넓어졌어도 미국 금리가 상승하면서 페그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홍콩과 미국 금리 차 확대는 페그제 유지 비용 증가는 물론 빈부 격차로 이미 쪼개진 홍콩의 사회적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

지난 2017년 부임한 캐리 램 홍콩 행정수반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빈곤층에 대한 정부 지원금과 세제 혜택 등 일부 조치가 있었으나 홍콩의 핵심적인 빈부 격차 지표인 지니계수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없었다.

지난해 홍콩의 지니계수는 0.539로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싱가포르의 지니계수는 0.4579, 미국의 지니계수는 0.411이다. 옥스팜(Oxfam)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홍콩의 빈부격차가 끔찍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불평등의 심화

홍콩의 빈부격차 확대 요인 중 하나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돈이다. 이 돈이 부동산 가격을 중산층과 빈곤층이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1908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가 불평등 해소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는 이유는 이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홍콩은 중국에서 유입되는 자본이 어떻게 홍콩의 사회경제적 역동성을 해치고 HKMA의 환율 통제력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연준이 유동성 흡수에 나설 때 인민은행은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다. HKMA는 연준과 인민은행 사이에 끼어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됐다.

홍콩이 페그제를 폐지하는 데 큰 걸림돌은 없다. 페그제 폐지 여부는 베이징의 시진핑 정권 수뇌부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변화의 조짐은 전혀 없다. 홍콩 달러 환율을 위안화 환율에 고정하는 페그의 전환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이런 조치는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조짐마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조셉 얌 HKMA 총재는 페그제 재검토를 역설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얌 총재는 홍콩 자본시장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며 ”중국의 자본시장 자유화가 진전됨에 따라 금융 센터로서의 홍콩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얌 총재의 발언은 중국의 역할이 커질수록 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HKMA의 환율 관리 능력과 페그제에 대한 도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홍콩이 페그제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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