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는 민간연구소인 랜드연구소가 워게임(war game)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과 싸우면 모두 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NATO)는 러시아의 발칸반도 공격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만 침공도 막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랜드연구소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과연 맞을까?
문제의 시뮬레이션은 데이비드 오치마네크(David Ochmanek) 수석 국제국방연구원 주도로 실시됐다. 그는 2015년 ‘미국의 안보구멍'(America’s Security Deficit)이라는 논문을 공동 저술했는데, 워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이 논문의 최신판에 들어있다.
시뮬레이션 결과, 러시아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나토 회원국들과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장소들과 러시아 사이의 지리적 근접성을 감안할 때 나토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불가능했다. 나토 주력부대가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러시아의 공격 시 반격에 나서려면 몇 주 내지 몇 개월이 걸렸다. 따라서 전쟁 초기 나토군은 빠르게 점령당하고, 군 비행장과 방공호는 파괴됐다.
이것이 분명 새로운 시나리오는 아니다. 존 해킷 경이 1978년 발표한 소설 ‘제3차 세계 대전: 1985년 8월’이나 톰 클랜시의 소설 ‘붉은 폭풍’, 그리고 좀 더 최근인 2017년에 나온 리처드 쉬레프 전 나토군 부사령관이 쓴 ‘러시아와의 전쟁: 고위 군사사령부의 긴급 경고’ 등을 비롯해 1970년대 이후 출간된 책들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예측했다.
워게임은 주로 장기적이 아닌 단기적 차원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공격이 실제로 성공을 거두려면 먼저 유럽 지도자들에게 싸우다가 피해를 입느니 정치적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 결과,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가 나토를 탈퇴하고, 러시아와 중대한 정치적 및 경제적 협약을 체결하거나, 미국을 소위 유럽에서 ‘왕따’ 시켜야 한다.
러시아 입장에선 전쟁 초기 발트 해 연안 국가 몇 곳을 점령한다고 해서 반드시 위 시나리오대로 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 나토군이 반격하면 러시아도 비행장이 파괴되는 등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즉, 러시아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물론 워게임은 정치적 결정 등이 미칠 영향까지 평가하지는 않는다.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충돌 관련 요소들만을 분석할 뿐이다.
러시아군 기획자들(military planners)이 나토군에 맞서 어떤 작전을 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들이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발트3국(발트 해 남동 해안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총칭)으로 작전 범위를 제한할지, 폴란드나 다른 동유럽 국가들을 침공할지, 아니면 독일의 급소를 찌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국과 이탈리아를 포함해 동유럽이나 서유럽 중 어디서건 나토 가입국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분명치 않다.
이런 모든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주로 괴롭힘에 집중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와 발칸반도에서처럼 ) 해외 거주 자국민을 정변(政變)을 지원하는 지렛대로 이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또 일부 지역을 장악하거나 친(親)나토 정부를 친러시아 정권으로 교체할 기회가 생긴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러시아군이 개입할 수도 있다.
크림반도를 포함해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사례를 보면, 러시아의 현 전략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그것이 반드시 러시아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시도는 어느 정도 좌절됐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벌인 전쟁은 2014년 3월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5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크림병합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돈바스에선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간 전투가 벌어졌다. 같은 해 9월 당사자들이 모여 정전을 선언하는 민스크 협정에 서명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다. 러시아가 이 지역 분리주의 세력을 부추기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 경제는 유럽과 미국의 제재 충격을 받고 있다. 연금을 포함해 중대한 의무 이행 능력이 약화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러시아에 관한 랜드연구소의 가설에는 문제가 있다. 러시아 지도부가 유럽을 공격할 준비가 확실하다는 전제 하에 워게임 시나리오를 짰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군사적 차원의 실증적 증거를 살펴봤을 때 러시아에겐 유럽에서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없다. 그런 종류의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상황이 더 유동적일 수 있다. 랜드연구소는 중국이 대만 내 미국과 일본 등의 공군기지와 항만과 미군 항공모함을 공격하고, 위성을 포함한 센서와 통신 단말기 및 보급창고와 해군 보급선 등의 물류 자산 같은 미국과 동맹군의 정보 시스템을 타격하기 위한 전략을 쓴다는 가정 하에 워게임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미국 등이 중국과의 무역을 끊고 다양한 경제적 및 정치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중국 경제 붕괴 위험이 커지지 않을까?
24명의 승무원을 태운 미국 해군 정찰기 1대가 남중국해 공해 상공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이를 요격하기 위해 출동한 중국 F-8 전투기 2대 중 1대와 공중 충돌한 후 중국 남부 하이난섬(해남도)에 비상 착륙했던 2001년 사건을 떠올려보자. 사건 직후 미국 대기업들이 하이난섬에 포로로 붙잡혀있던 미군 조종사들의 석방을 돕기 위해 중국산 제품 판매를 중단하자 중국 경제는 어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 등은 대만 방어에만 집중할까? 아니면 군사적 이유를 대며 중국군 미사일 발사 부지와 조립 장소 파괴도 시도할까? 중국 해군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공격에 침몰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랜드연구소는 중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가설을 뒷받침해줄만한 증거는 없다. 중국이 진정 현대전에서 싸워 이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인해전술을 썼던 1950년도가 아니다. 중국이 남중국해 섬들을 무혈입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미국이 유럽이나 발칸반도나 폴란드나 아시아(대만이나 일본)가 공격을 당할 때 가만히 보고 결과만 지켜보고만 있을 가능성은 낮다. 미국과 아시아 및 유럽 동맹국들 간 관계의 핵심은 적의 어떤 공격이라도 효과적으로 격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국과 동맹국과 전력구조 면에서 수정과 개선이 필요한 틈이 있다는 랜드연구소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 틈이 치명적이거나 극복 불가능한 건 아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랜드연구소의 워게임 시나리오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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