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중국 총리 (사진: AFP)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부상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과 거리를 두라는 미국의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럽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지정학적 이해관계 사이에서 중국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월 유럽 방문에 앞서 2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EU)은 이달 21-22일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European Council)에서 중국과 공정한 경제 관계를 맺기 위한 조건을 구체화한 10개 항목의 실행 계획을 채택할 예정이다.

시 주석은 다음 달 9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연례 EU 중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회의 참석에 앞서 시 주석은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처음으로 ‘일대일로’ 참여를 결정한 이탈리아를 방문해 일대일로 참여 양허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시 주석은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도 방문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이달 12일 공개한 ‘EU-중국 전략적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양측의 경제 관계 정립을 위한 10개 항목의 실행 계획을 제시했다.

EC는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대안적 통치 모델을 홍보하는 체제 경쟁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EC의 보고서는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28개 회원국의 공통적인 이해관계가 녹아든 결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균형 잡힌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은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효과적인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있고 중국도 이미 이런 개념 속에 포함돼 있다.

중국은 이란 핵 협상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협력했고, 아프가니스탄의 평화 정착과 미얀마의 로힝야족 문제 해결에도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다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주변국은 물론 미국이나 유럽과의 지정학적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브뤼셀의 유럽연합 관료를 제외하면 사실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EU의 전략”은 지난해 나온 공동성명에 포함됐으나 아무도 이에 주목하지 않았다. “국제적 기준을 바탕으로 EU와 중국을 포함한 제3국과의 운송과 에너지, 디지털 연결망에서 시너지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유럽이 중국과의 폭넓은 경제 협력을 염두에 두고 포함한 내용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올 만하다.

이번 EC 보고서에는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중국의 야심 찬 국책사업인 ‘일대일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중국의 ‘제조 2025’에 대한 언급은 있었으나, 미국 정부와 달리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EU의 입장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점은 차별적인 시장 접근이다. EU는 중국이 EU 기업에 더 많은 중국 진출 기회를 보장하고 자국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과의 합작 투자를 통해 중국에 진출한 유럽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모든 내용이 2020년 체결 예정인 EU와 중국의 FTA에 담길 전망이다.

EC가 제시한 실행 계획에서 특히 눈에 띄는 내용은 9번 항목이다. “디지털 보안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5G 이동통신망 보안 문제에 대한 EU의 단일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EC는 추가적인 권고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처럼 유럽은 일대일로와 제조 2025, 화웨이의 5G 장비 문제가 얽혀있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내야 한다. EU는 화웨이의 5G 장비 사용을 금지하고 일대일로의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미 20여 개 EU 회원국이 일대일로와 연결됐거나 관심을 보이고, 다수의 회원국이 화웨이의 5G 장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브뤼셀의 외교관들은 Asia Times 기자에게 EC 보고서는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보고서는 미국처럼 강경한 태도는 아니지만 중국의 위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에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뿐 아니라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문제인지 보여주고 있다. 유럽과 중국과의 경제 협력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실존적 위협

중국은 EU 내부뿐 아니라 나토의 영역까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제조 2025와 화웨이의 5G 장비와 함께 일대일로를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관점은 다르다.

EU는 미국이 중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동맹국에 대해 보복 조치에 나설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나라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중국과 러시아, 독일 순이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 강화에 나서면서 격론을 유발했다. 이탈리아는 특히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자금 지원을 받아 중국과 함께 도로와 항만 등의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EU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베네치아와 트리에스테, 제노아항을 일대일로와 연결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대서양주의자들은 이탈리아에 경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독자적인 행동에 앞서 EU에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든 이탈리아는 독자 노선을 유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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