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한 옷가게에서 판매 중인 티셔츠 옆에 사회주의 혁명의 아이콘인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부터 이틀 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인 가운데 일각에선 북한이 회담 개최국이자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을 따라 새로운 자본주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달 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협상이 성공하면 “북한은 김정은의 리더십 아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다. 그는 몇몇 사람을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능력을 전부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다른 종류의 로켓, 즉 경제 로켓이 될 것”이라고 썼다.

그는 북한이 베트남처럼 변화하기를 기대하며 이 트윗을 썼을지 모른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1960~1975년) 이후 한동안 적대적 관계에 따른 제재로 빈국에 머물렀지만, 공산당이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개혁개방과 데탕트(긴장완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제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 가운데 하나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의 훵리투 선임 분석가는 “북한이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한 채 자본주의 개념을 수용해 경제발전을 이룬 베트남을 모방할 것이란 생각이 새롭지는 않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 건 1986년부터 시작한 경제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Doi Moi) 덕분이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도이모이 시작 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북한과 베트남은 1990년대부터 개혁개방에 대해 논의해왔다.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2년에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응우옌떤중(Nguyen Tan Dun) 전 베트남 총리와의 회담에서 “베트남이 사회·경제 건설과 개발 과정에서 쌓은 경험을 공유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한 유치원 벽에 그려진 김일성 주석(우)과 호찌민 전 주석의 사진. 사진: AFP

분명 개혁개방 차원에서 북한과 베트남은 유사점이 많다. 예를 들어 양국은 미국의 신랄한 비판 대상이었다. 1983년 미국은 베트남을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나라”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북한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도 북한처럼 추락했었다. 1984년 베트남은 세계 20대 최빈국에 속했다. 당시 나온 미국 국무부 통계 자료를 보면 베트남의 1인당 GDP는 160달러(18만원)에 불과했다. 인플레이션은 종종 1,000%에 달했고, 소련이 비싼 가격에 베트남산 제품을 수입해줬지만 베트남의 수출은 보잘 것 없었다. 베트남 경제는 수입에 의존했고, 국가 부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또 일부 서양 국가들의 제재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2017년 미국 주도의 새로운 제재로 북한 경제가 침몰하고 있다는 데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북한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146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GDP는 36조3,818억원으로 남한(1,569조416억원) 대비 43분의 1수준이다.

2015년 11월 27일 하노이 국방부 앞에서 박영식 북한 인민무력상(좌)과 풍꽝타인(Phung Quang Thanh) 베트남 국방장관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 베트남 뉴스 통신사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베트남 전문가 빌 헤이튼(Bill Hayton)은 북한은 1980년대 베트남으로부터 비핵화의 교훈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베트남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986년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군인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했고,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주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군인들은 장사를 하며 푼돈을 벌어 살았다.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이런 식의 개인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굶주림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당국과 경찰은 눈감아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덕에 베트남은 살아났다. 다만 공산당은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점들을 제외하면 1986년 베트남은 오늘날의 북한과는 딴판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베트남의 전면적이고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쉽게 모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글로벌 정책 전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국방분야 선임 분석가 데렉 그로스만(Derek Grossman)은 “북한과 베트남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틀렸다”며 “오늘날 북한은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고 있는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1980년대 후반 베트남은 국제사회로부터 1979년 침공한 이웃국가 캄보디아로부터 철군하라는 요구만을 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근본적으로 현재 북한을 통치하는 조선노동당은 베트남 공산당에 비해서 훨씬 더 독재적인 왕조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는 1945년 조선노동당 창건 이래 70여 년 동안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통치가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로이터)

반면 베트남 공산당은 항상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를 따랐다. 공산당 일당 체제인 베트남은 1970년대 이후 권력서열 1위인 당 서기장을 정점으로 국가주석(외교·국방),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 등 최고지도자 4명이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응웬푸쫑(Nguyen Phu Trong) 공산당 서기장이 국가주석이 되면서 이 체제가 무너졌지만 고위 정치인들은 연임까지만 허용되고, 65세가 넘으면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1986년 이후 지금까지 공산당 서기장은 여섯 차례, 총리는 일곱 차례 바뀌었다.

이런 식의 권력분점 합의는 정기적으로 젊은 관리들로 공산당을 활기차게 채우고, 한 사람이 독재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 심지어 베트남의 혁명 영웅이자 공산당의 도덕적 지도자인 호찌민에 대한 숭배도 그의 사후에 시작됐다. 이후 개인숭배를 시도한 베트남 정치인은 없었다.

1986년 도이모이 경제 개혁만큼이나 중요한 건 베트남의 정치적 변신이었다. 1960년도부터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레주언(Le Duan)이 1986년 도이모이 개혁을 채택한 당 대회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트루옹친(Truong Chinh), 레득토(Le Duc Tho), 팜반동(Pham Van Dong) 등 정치국원 3명도 은퇴를 선언했다.

오늘날의 북한에서는 그런 정치 혁신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베트남의 ‘민주집중제’ 관행이 도입된다면 수십 년 동안 유일 독재자에 좌지우지된 조선노동당은 무너질 게 분명하다.

양국 공산당이 최근 이념에 대해 유연해졌다는 점은 같지만 선택한 길에선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베트남은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무역 촉진을 위해 국제 관계 개선을 우선시했다. 1988년 초 공산당은 “친구를 늘리고 적을 줄이자”란 좌우명을 제시했다.

최근 몇 년간 베트남 경제는 매년 6% 넘게 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속도다. 이처럼 빠르고 성공적으로 경제를 변화시킨 나라는 많지 않다.

하노이 시내에서 영업 중인 옷가게. 사진: AFP)

베트남 국민들은 변화를 반겼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산하 시장조사 서비스인 FT 컨피덴셜 리서치(FT Confidential Research)가 최근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90% 이상이 자유무역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북한은 2009년 4월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남은 건 소위 ‘김일성·김정일주의’와 같은 개인 숭배 독재 이데올로기뿐이다.

북한 전문가인 브라이언 레이놀즈 마이어스(Brian Reynolds Myers)는 2010년 저서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시그마북스)’에서 “북한의 공산주의가 북한 주민의 인종적 순결과 반미주의 단결을 강조하는 일본 파시즘과 유사하게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제1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판단할 때 북한이 반미주의를 포기하는 등 180도로 바뀌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 1986년 베트남과 오늘날의 북한 간 역사적 차이도 상당하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이 이끄는 정부는 불과 40년 만에 식민주의를 물리치고, 국가를 통일하고,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는 한편, 집단 학살을 자행한 급진적인 좌익 무장단체 크메르루주로부터 캄보디아를 해방시켰다고 선전할 수 있었다. 그런 공산당의 성취는 당시 심각했던 경제 상황에 대한 국민 불만을 다소 완화시켰다.

반면에 오늘날의 북한은 한국전쟁(1950~1953년)에서 이기지 못했고,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동안 어떤 중대한 군사적 충돌도 일으키지 않았다. 수년 동안 기근과 기아가 반복되면서 북한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역사적 성취에서 베트남 보다 열세인 북한에게 독자 개발한 핵무기가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비핵화는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을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식 개혁 개방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 서명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고 있다. 사진: AFP

지난 1986년 베트남이 자유시장 개혁에 착수했을 때 중국을 포함한 이웃나라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은 그들을 따라잡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현재의 북한은 각각 세계 2위, 3위, 12위 경제대국인 중국, 일본, 한국에 둘러싸여 있고, 훨씬 더 정교하고 첨예한 세계 경제 질서 속에 놓여있다. 따라서 북한이 베트남의 개혁 경험을 쉽게 모방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과 분석가들에게 응용 가능한 역사적 사례가 부족하다.

다만 현재의 북한과 과거의 베트남이 처한 정치, 경제적 상황이 달라도 북한이 베트남식 변화가 가능하다고 실제로 믿고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다. 이런 믿음이 있느냐에 따라 제2차 북미정상회담 성공 여부 등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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