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랜디 콜린스 씨(우)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케스케 크리스찬 콜린스 군의 모습. 2008년 어머니가 콜린스 군을 일본으로 데려간 후 부자 간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 랜디 콜린스

일본 정치인과 외교관들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꾸준히 비난해왔다. 납치는 북한이 저지른 무수한 인권 유린 행위 중 하나다.

이보다 덜 알려진 유사한 사실이 있다. 수백 명의 미국 아이들이 국제 협약을 무시하고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부모들의 탈취로 수십 만 명의 일본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캘리포니아 주 산타아나에 살고 있는 미국인 랜디 콜린스 씨에게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다. 그가 아들 키스케 크리스찬 콜린스 군을 마지막으로 본 건 아들이 다섯 살 때인 2008년 6월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법원이 콜린스 군이 “오렌지카운티나 캘리포니아, 미국 내”에 머물도록 판결한 지 불과 3일 만에 그의 전 부인인 레이코 나카타 그린버그 콜린스 씨는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달아났다. 콜린스 씨가 아들의 정확한 행방을 알고 난 뒤인 2015년에야 일본으로 건너가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콜린스씨는 아시아 타임스 기자에게 “일본 정부가 내 입국 사실을 레이코에게 알리자 그녀가 아들을 데리고 계속 도망을 다녔다. 내가 출국하려 하자 요쓰카이도 시 경찰이 항공사에 연락해 나를 공항에 억류하려 했다. 내가 이유를 물었지만 그들은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항공사 직원에게 보여주며 그곳에 전화를 걸겠다고 하자 경찰이 마침내 내 탑승을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오렌지카운티 경찰국은 레이코씨의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그녀는 현재 ‘부모 유괴’ 혐의로 FBI 수배 명단에 올랐고, 인터폴도 그녀를 ‘적색 수배’(Red Notice)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일본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록 그녀가 찾기 쉬운 곳에 숨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10년 반 동안 아들을 보거나 아들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들을 만나서 아빠 노릇을 해주고 싶을 뿐이다. 일본은 기본적인 부모의 권리를 무시하고, 이러한 불법 탈취 행위를 계속해서 묵인해주는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콜린스씨는 말했다.

FBI 수배 명단에 올라와 있는 레이코 나카다 그린버그 콜린스 씨의 모습. 사진: FBI 포스터

부끄러운 기록

2014년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은 국제적 부모 자녀 탈취 사건에 가장 비협조적인 나라 중 하나로 일본을 지목했다. 특히 1983년 발효된 ‘국제적 자녀 탈취의 민사면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Civil Aspects of International Child Abduction) 차원에서 볼 때 일본 정부는 신뢰하기 어렵다.

콜린스씨는 “1994년 이후 약 400명의 미국 아이들이 일본으로 탈취(abduction)됐다”며 “일본이 협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없을 것이다”고 밝혔다.

콜린스씨는 아베 총리의 생각에 공감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일본이 자녀 탈취 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미국은 일본에게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해줘서는 안 된다. 일본이 왜 북한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가? 북한은 거의 40년 전에 납치한 일본인 17명 중 5명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일본은 (불법 탈취된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수잔 로렌스 미국 국무부 영사사업부 아동 문제 특별고문은 “일본이 ‘국제적 자녀 탈취의 민사면에 관한 협약’을 이행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제적 자녀 탈취 사건을 주제로 열린 미국 정부 청문회에 출석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일본이 협약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어서 유감이다. 다만 그나마 상황이 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쁠 뿐이다”고 말했다.

자녀 탈취 방치하는 일본

하지만 모두가 상황이 나아졌다는 로렌스 고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중반 파리에서 일본 외무성과 일본변호사연합회(Japan Federation of Bar Associations) 주최로 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2011년 결성된 비영리조직인 ‘탈취 자녀를 귀국시키자’(Bring Abducted Children Home)의 제프리 모어하우스 전무이사가 입수한 녹음 내용에는 일본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자식을 일본으로 탈취하는 방법과 귀국 방지 방법을 지도하는 듯한 내용이 들어있다.

모어하우스 이사는 “일본 정부가 잠재적 탈취자들에게 ‘국제적 자녀 탈취의 민사면에 관한 협약’을 피해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국제 협약을 충격적이고 노골적으로 경시하는 모습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2007년 5월 워싱턴 주에서 6살 반 된 아들 ‘모치’ 아토무 이모토 모어하우스 군에 대한 단독 양육권을 부여받았다. 단독 양육권은 이혼한 부모 가운데 한 사람만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던 2010년 6월에 그는 법에 따라 엄마와 함께 일주일간 머물 수 있도록 아들을 엄마에게 데려다 주었다. 이후 모어하우스 이사는 아들을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6일 뒤 경찰로부터 어떤 부모라도 받고 싶지 않았을 법한 전화를 받았다. 아들과 전 부인이 실종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전 부인이 아들을 일본으로 데려갔다. 그 순간 내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전 부인이 아들과 함께 워싱턴 주를 떠나지 못하게 막는 법원의 여권 및 여행 규제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모어하우스 이사는 “일본 시애틀 총영사관이 전 부인의 여권 발급을 거부하자 그녀는 포틀랜드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가서 여권을 발급받았다. 여권 발급 정책 위반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동료들은 가끔 모어하우스 이사에게 아들이 엄마와 같이 있으니 적어도 안전한 건 아니냐고 말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아들은 안전하지 않다. 당신이 어린이인데 엄마가 당신을 외국으로 훔쳐간 다음에 ‘아빠가 너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거나 ‘아빠가 죽었다’고 알려준다고 상상해보라. 그것은 당신의 모든 삶을 거짓으로 만드는 짓이다. 또 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해야 하는 부모가 할 짓도 아닌 아동학대다.”

일본도 고통 받아

모어하우스 이사는 많은 일본인들이 이러한 자녀 탈취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나라 부모들만 고통을 받고 있는 건 아니다. 부실한 국내법과 법집행으로 수천 명의 일본인들이 헤어진 배우자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자녀 양육권을 받더라도 다른 부모가 종종 이를 따르길 거부하는데도 경찰은 무기력하게 대응할 뿐이다.

로렌스 고문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가 (양육권을 가진 부모에게)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거부해도 일본 당국이 쓸 수 있는 명령 집행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인정했다.

문제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NGO인 ‘키즈나 아동-부모 재결합’(Kizuna Child-Parent Reunion)의 존 고메즈 회장은 아시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 통계에 따르면 매년 15만 명 정도의 아이들이 이혼 후 부모 중 한 명을 만나지 못한다. (일본에서만) 지난 20년 동안 그런 아이 수가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일본 법무성 입법 심의 소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는 민사소송법 검토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혼법에 따라 공동 양육권은 여전히 불법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시정 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일본 최대 신문인 <요미우리신문>은 2018년 7월 1일자 1면에 “일본 정부가 양육권 분쟁과 배우자의 어린이 유괴와 같은 행동을 막기 위해 공동 양육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아이들이 탈취된 일본 외 국가 부모들에게 위안을 주지도 못하고, 그로 인해 일본이 국제 협약 준수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어하우스 이사는 “탈취범들을 대변하는 일본 판사들은 아이가 한 부모로부터 소외된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판결하기 위해 ‘아이들이 누릴 최선의 이익’을 조작하고, 탈취한 부모와 아이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무시한다. ‘국제적 자녀 탈취의 민사면에 관한 협약’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향은 모두 틀렸다”고 말했다.

조용한 목소리

일본에서 아시아 타임스 기자들은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일본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한 부모의 마지막 주소지라고 알려진 곳이라도 찾아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치’ 아토무 이모토 모어하우스 군의 모습 사진: 제프리 모어하우스

모어하우스 이사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돌려받기 위해 얼마 전 일본에서 열린 법정 다툼 때 13세 아들이 ‘아버지 생각이 나느냐?’는 질문을 받자, 눈물을 주룩 흘리면서 ‘밤에 가끔 아빠 꿈을 꿔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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