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 컨셉 사진. 사진: 아이스톡

영국이 브렉시트 데드라인인 3월 29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일명 ‘노딜’(no deal)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싱크탱크인 독일개발연구소(German Development Institute)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노딜 브렉시트’ 시 캄보디아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내다보는 한편, 개발도상국 국민 최대 170만 명이 ‘극도의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은 많은 동남아 국가에게 2~3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들 수출주도형 개발도상국의 주요 투자국이다. 영국은 이 지역에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보다 3배 이상 투자하고 있다.

1월 초 의회에서 부결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이 이번에 재차 부결된다면 영국 무역 상대국들의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국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된 건 192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차 투표는 이달 말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1월 투표보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마저 부결될 경우 영국은 협상 없이 EU를 떠날 수 있다. 그럴 경우 3월 29일 저녁 EU와의 무역 협정이 대부분 파기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하에서만 유럽 파트너들과 무역을 할 수 있게 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런던 관저에서 나오는 모습. 사진: AFP

영국은 또 EU가 개발도상국과 맺은 특혜무역 협정에서도 배제된다. 영국은 EBA 조약 혜택을 제공해줄 수 없다. EBA는 ‘무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뜻하는 Everything But Arms의 약자로, 49개 개발도상국이 제품을 EU에 수출할 때 무기를 제외한 모든 제품의 관세를 면제 받는 조약이다. 따라서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으로 수입되는 개발도상국 제품의 검역 시간이 늘어나거나 새로 부과될 관세 납부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수 있다.

독일개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일어나고, 영국 의회가 빠른 시간 내에 개발도상국들과 비관세장벽에 대한 대체 법안을 합의해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브렉시트는 몇몇 아시아 개발도상국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잠재적 파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2013~2015년 수치를 토대로 분석했으나, 노딜 브렉시트 시 EBA 조약을 적용받는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이 0.01%에서 1.08%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확률이 높은 나라는 캄보디아다. 캄보디아는 EBA 조약을 적용받는 어떤 나라보다 영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 2016년 기준으로 영국은 캄보디아에게 독일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었다. 그해 영국은 캄보디아로부터 14억 5,000만 달러(1조 6,300억 원) 상당의 의류와 신발류를 수입했다. 이 산업은 캄보디아 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며, GDP에도 상당히 크게 기여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 시 캄보디아의 가계 소비는 1.4%, 가계 소득은 0.8% 감소할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GDP도 최소 1%는 쪼그라들 전망이다. 보고서는 “브렉시트의 부정적인 영향을 보수적으로 추정했는데도 그 정도”라며 “불확실성, 파운드화 가치 하락, 원조 지출․송금․투자 감소가 미칠 추가적 여파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추측은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3월 29일 마감 시한 전까지 메이 총리가 2년 넘게 협상을 벌여온 585쪽짜리 ‘브렉시트 협상안’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영국은 2020년 말까지 EBA 조약을 포함해 EU의 무역 원칙 대부분을 적용하면서 EU와 향후 무역 규정 협상을 벌이게 된다.

영국 의회가 정부에게 협상 시간을 더 주기 위해 브렉시트를 몇 달 연기하도록 하는 결정을 할 경우에는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그럴 경우 영국은 EBA 조약과 EU의 다른 특혜 관세 혜택을 좀 더 제공할 수 있다.

가능성은 작지만 또 다른 시나리오는 의회가 재차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EU 탈퇴 문제를 다시 영국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최근 몇 주 동안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3월 29일 동남아시아 수출업체들은 영국과 지금과는 사뭇 다른 수출입 규정에 직면할 수 있다.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entre for Global Development, 이하 CGD)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영국이 3월 29일 이전에 기존 수출입 관련 법안을 신속히 개정하여, 개발도상국 제품에 대해 EBA 조약 같은 EU의 특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대영국 수출 타격이 가장 심할 걸로 예상되는 10개국 (GSP: 일반특혜관세제도, EBA: 무기를 제외한 모든 것, AA: 유럽연합협정, DCFTA: 심오하고 포괄적인 자유무역영역, EPA: 경제협력협정 출처: CGD

보고서는 법안 개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브렉시트가 의회 업무 일정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면서 “이런 최악의 경우, 노딜 브렉시트 후 개도국들은 영국 시장에 접근할 때 누렸던 모든 특혜를 잃고, 훨씬 더 높은 관세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분명한 문제는, 캄보디아를 포함한 세계 최빈국들과의 무역이 현재 영국 정부의 최우선순위인지, 그것을 영국 정부가 우선순위에 포함 시켰는지의 여부다. 2016년 기준으로 영국과 동남아와의 양자교역 규모는 약 418억 달러(47조 원)였다. 이중 68%가 싱가포르(36.1%), 태국(17.1%), 베트남(14.9%) 3개국과의 교역이었다. 영국과의 무역이 캄보디아에겐 중요할지 모르지만 영국에게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수준에 불과하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무역 협정을 서둘러 추진하려고 한다면 먼저 동남아시아 최대 부국인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협정을 추진하는 일부터 신경을 쓸 것이다. 브렉시트 협상안 덕에 영국의 EBA 조약 효력이 2020년 말까지 연장될 경우 캄보디아와 같은 나라들은 시간을 벌 수 있겠지만, 이런 최상의 시나리오 하에서도 그때가 되면 무역협정 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2016년 6월 영국 국민들이 간발의 표 차로 EU 탈퇴를 결정한 이후 보수당이 이끄는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를 확대하는 ‘모든 아시아’(All of Asia) 정책과 함께 새로운 ‘세계적 영국’ 건설 의지를 거듭 밝혔다.

심지어 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에서 새로운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남중국해를 비롯한 이 지역 안보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제레미 헌트(Jeremy Hunt) 외교부 장관 같은 각료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브렉시트 이후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이하 FTA)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누차 방문했다.

헌트 장관은 1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방문 당시 “아시아에서 영국은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고, 자유 무역과 법치와 개방 사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지지하는 나라들, 즉 세계 민주국가들을 함께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사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제안된 FTA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 영국 정부는 올해 공식 출범한 11개 국 자유 무역 블록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이 협정 참여국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영국이 EU와 협상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비준하지 않은 베트남과 아세안 10개국 전체와 맺을 FTA 조건을 그대로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아세안 국가들이 분명 재협상을 원할 것이라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그들과 더 쉽게 FTA를 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인권과 외국인 지분 같은 문제와 관련 영국보다 EU에 훨씬 더 많은 양보를 했다.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영국이 EU에 남아 있는 한 아세안 국가들과 상호 FTA 협상을 공식적으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협상을 시작해도 몇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달은 족히 걸릴 수 있다. 그 동안 영국과 이 지역 간 무역은 새로운 관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뷔르겐 하크(Jürgen Haacke)와 존 할리 브린(John Harley Breen) 교수는 작년에 발간한 논문에서 “영국과 아세안 간 FTA 가능성은 영국이 아세안의 대화 파트너로 인정받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단 영국이 EU를 떠난다면 EU가 아세안과 같이 구축한 외교 채널에서도 떠나게 된다.  EU에 속하지 않는 노르웨이와 스위스가 2015년 ‘부분 대화 상대국’이 되고, 독일은 2016년 ‘개발 상대국’으로 선정되긴 했지만 1999년 아세안은 다른 나라들과의 새로운 대화 관계 수립을 중단했다.

아세안이 영국과의 대화 파트너십을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동반자 관계’ 논의가 결실을 맺게 될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중 어느 쪽이든 협상과 실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게 분명하다.

그 사이 영국은 개별 동남아국가들과 상호 FTA 체결을 서두를 수 있지만, FTA가 하루아침에 성사될 가능성은 작다. 심지어 이보다 더 규모가 큰 영국과 아세안 FTA는 진전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영국이 과거 오랫동안 식민지였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파트너인 싱가포르와 가장 먼저 FTA를 체결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하크와 브린 교수가 지적했듯이 “아세안이 향후 영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에 영국이 먼저 나서서 그들과의 관계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 협상가들이 받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수세기 만에 가장 골치 아픈 헌법적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관심이 다양한 방향으로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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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5/17/2019 @ 3:12:57 PM In my estimation, cms.ati.ms does a good job of handling subjects of this sort. Even if sometimes deliberately controversial, the material posted is generally well-written and challe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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