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의 연설 모습. BOJ는 인플레이션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물가 상승률을 끌어 올리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진: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임이 드러났다. 일본의 수출은 지난해 12월 수출은 전년동월대비 3.8% 감소한 데 이어 1월에도 20일까지 전년동기대비 8.9% 감소,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치적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국은 일본이 아닌 중국이어야 한다. 하지만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기 부양 카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선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중국인민은행과 시중 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 주석과 다른 처지에 있는 아베 총리가 느낄 두통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수출 부진은 그에게 다음 네 가지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1) 경기침체 가능성

일본은 작년 3분기의 마이너스 2.5% 성장이 예외적인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4분기 경제가 반등한 것으로 나타나더라도 그런 반등 분위기가 지속될 걸로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대내외적으로 일본 경제 반등을 막는 암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다.

올해 대외 수요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내 여건도 그리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는 걸 알려주는 부정적 신호는 이미 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기업들이 마침내 지갑을 열고, 근로자 임금을 올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와 10%씩 관세를 물리고, 2,5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후 일본 기업들은 장기 소비 증진에 필요한 본격적인 임금 인상이 아니라 일회성 보너스 지급에 그치는 경향을 보였다.

아베 총리가 관료주의 청산과 생산성 증대 등을 위해 정치적으로 어려운 조치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 경제의 회복을 위한 어떤 노력도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2) BOJ의 정책 전망

1년 전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었던 양적완화 실험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웠다. 그가 이끄는 경제팀은 7,300억 달러에 달하는 연간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하기 위한 ‘테이퍼링’(tapering, 양적완화 정책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나가는 것) 가능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8년, BOJ는 2% 인플레이션 목표의 절반만 달성했을 뿐이다.

올해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약화될 것이다. 더구나 구로다 총재팀은 엔을 더 찍어내야 할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게 분명하다. 일본의 수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엔화 강세를 막는 게 BOJ의 당면 목표다. 작년 10월 이후 4.4% 오른 엔화 가치는 올해 일본의 수출 전망뿐만 아니라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구로다 총재가 추가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 국채의 절반 이상과 상장지수펀드(ETF)의 75%를 보유하고 있는 이상 BOJ는 다른 자산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BOJ는 회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늘릴 수 있다. 지방채 대량 매입 내지는 가계에 직접 현금 지원을 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이런 노력들이 효과를 낼까? 아베 총리가 경제 규제 완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규제 완화에 나서도 BOJ의 발권 압박이 다시 커질 수 있다.

3)소비세율 인상 논쟁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2014년도에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면 경기침체가 도래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대로 배웠을까? 당시 자민당이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올리자 일본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그런데 올해 10월 자민당은 또다시 소비세율을 10%로 올릴 계획이다. 이번에 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선진국 최대 수준인 공적채무 부담을 낮추기 위해 세율 인상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자민당은 세율 인상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신규 국채 발행 부담을 감수하며 경기부양책을 내놓아야 했다. 일본 정부가 지고 있는 채무 부담은 14.9조 달러에 달하는 일본 경제 규모의 두 배 이상이며,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10월 소비세율을 다시 올릴 경우 가계 소비와 기업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앞으로 몇 달 동안 경제의 구조적 업그레이드 보다 세금 문제에 관해 논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할 전망이다.

4)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기

아베 총리는 작년 미국의 상호무역협상을 미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일본에겐 다행스럽게도 중국과의 무역협상,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워싱턴 내 수많은 조사들이 그가 협상을 미룰 수 있게 도와줬다. 하지만 올해에는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 국내에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에서 신속한 승리를 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아베 총리는 아주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분노를 감수할지, 아니면 자민당의 보수적 기반을 분노케 만들지 선택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협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미국에 유리한 조건만 강요할 뿐이다.

아베 총리가 버틸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은 한국이 될 수 있다. 그는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위협을 실행에 옮길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현대와 기와 자동차는 물론이고 전 세계 납품망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떤 회사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의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말라고 위협해왔다. 달러 약세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경기 둔화 상황에서 달러 약세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모두 원하지 않는 카드다. 2019년은 동북아시아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해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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