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홍보관에서 방문자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 AFP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일본에 이어 일부 유럽 국가도 5세대 정보통신망 개발과 장비 공급자 대상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의 이런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에서 국가 안보의 문제로 공격 대상이 된 화웨이에 새로운 부담이 될 전망이다.

프랑스는 화훼이의 무선통신 인프라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보도됐다. 영국의 통신업체 BT 그룹도 최근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도됐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도 화웨이 장비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로부터 중국 공산당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나, 이를 부인해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멍완저우 CFO가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미국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자 중국은 2명의 캐나다인을 중국의 안보를 위협했다는 혐의로 체포하며 대응했다.

화웨이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우려는 이달 초에 유럽으로 확산됐다. 폴란드 사법당국은 화웨이의 폴란드 영업담당 이사를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체포된 인물은 전 폴란드 주재 외교관이었던 왕 웨이징이다.

화웨이는 즉각 왕 전 이사 해임을 발표하고, 그의 행위는 자사와 관련이 없으며 자사의 명성을 훼손시켰다고 밝혔다.

왕 웨이지 전 이사의 체포 1주일 전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는 체코의 사이버보안 기관인 NCSIA(National Cyber and Security Information Agency)의 보안 경고에 따라 직원들에게 화웨이 스마트폰 사용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화웨이의 체코 5G 통신망 구축 사업 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불분명하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체코 정부의 화웨이 스마트폰 사용 중지 조치에 대해 대단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화웨이 움직임에 대한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의 기관지 글로벌 타임스는 폴란드를 “미국과 공범”이라고 부르며 “중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화웨이가 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지키도록 도와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보복조치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유럽에 반화웨이 캠페인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연말 트럼프 행정부는 독일에 기술 전문가들을 파견했고, 이들은 독일 의원들과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폴리티코 유럽 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미국 전문가들은 독일이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화웨이의 5G 통신 광고. 사진: AFP

이 회의가 지난 연말에 나온 도이치텔레콤의 화웨이 장비 사용 재검토 발표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도이치텔레콤은 독일의 3대 통신사업자 중 하나다.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이자 유럽연합(EU) 주도국인 독일의 입장은 다른 유럽 국가가 미국과 호주, 일본 등에 이어 화웨이 배제에 동참할지를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안드러스 안집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회장은 화웨이의 유럽 5G 시장 진출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화웨이와 다른 중국 통신업체들을 언급하며 “이 회사들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 없다”며 “그들은 정보기관과 협력해야 하고 이는 의무적인 내통이다. 이런 의무적인 내통에 항상 반대해 왔다. 그들은 우리의 기밀을 빼내기 위해 어디엔가 전자 칩을 심어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보통신업체에 대한 유럽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중국 업체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 시장 진출이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유럽 시장 진출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화웨이의 자국 시장 진출을 막고 있다. 사진: 로이터

레이쥔 샤오미 회장은 최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세계 시장 확장을 위해 유럽 진출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3월에는 주요 목표가 미국 시장 진출 확대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의 유럽 실적은 빠르게 개선돼 왔다. 시장조사업체 커낼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유럽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애플은 2위를 기록했다. 화웨이는 16%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3위에 그쳤다. 하지만 삼성이나 애플과 달리 화웨이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급상승하고 있고 4위를 차지한 샤오미의 점유율도 상승하고 있다.

화웨이는 유럽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홍보를 통해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를 예로 들면 화웨이는 그리스에서 음악 이벤트를 후원했고 독일에서는 “차이나 페스티벌”을 후원했다. 화웨이 경쟁사인 중국 업체 비보는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후원사였다.

화웨이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 사진: AFP/NurPhoto

유럽 각국 정부가 폴란드의 화웨이 임원 체포와 강도가 높아지는 미국의 로비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중 무역 전쟁에서 드러나듯 중국 기업의 성장이 중대한 경제적 위협이 된다는 미국의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은 자국의 대기업을 경제적 전환과 중국의 평화적인 지위 향상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미국과의 정치와 안보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늘어나는 중국과의 교역과 투자를 유지하려고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유럽이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가 유럽에서 매우 낮다는 점도 유럽의 정치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일부 유럽 정치인들의 발언을 보면 고민에 빠진 그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레트 이사는 “2019년 유럽은 새로운 전략적 상황에서 미국과 함께 갈 것인지,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며 “유럽인들은 중국의 지도자들의 목표와 방식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중국의 부상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공유하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또 새로운 정치, 경제적 냉전 상황에서 어느 한 편에 갇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스파이 행위와 도청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지만, 유럽 정치인들은 미국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기억도 갖고 있다. 전 미 국가안보국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지난 2013년 미국 정보당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일부 유럽 국가의 주요 정치인들을 감청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유럽인들은 미국의 안보 우려를 중국 정부를 자극하는 데 따른 경제적 리스크 보다 우선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대다수 유럽 국가는 빠른 통신과 데이터 전송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놓치지 않도록 5G 통신망을 조기에 구축하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미국과 중국 기업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보다 앞서 전국적인 5G 통신망을 구축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기는 올해 말이나 내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쉬 즈쮠 화웨이 순환 CEO가 중국 우젠에서 열린 세계인터넷컨퍼런스에서 상용화 전 단계의 5G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AFP

유럽에서는 통신장비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미국이나 중국 기업에 대해 뒤처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규모의 경제가 이런 기술 격차의 주범이다.

유럽 정치인들, 특히 프랑스 정치인들은 초국가적 M&A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유럽 챔피언”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스톰이 철도산업에서 챔피언이 되기 위해 합병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양 사의 합병이 성사되면 세계 최대 철도 차량 제조업체인 중국 국영기업 CRRC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합병의 성사 여부는 2월에 열리는 유럽위원회의 투표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합병이 독점을 불러와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양사의 합병이 이루어지면 유럽의 낡은 경쟁법을 무너뜨리면서 자금과 크기에서 유럽이나 중국 기업보다 열세인 유럽 하이테크 기업의 M&A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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