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마두로 지지, 큰 대가 치를 수도

‘한 나라 두 대통령’이란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지난달 23일 임시대통령을 자처하자 미국과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과 중남미의 주요국가 등 우파 국제 사회가 그를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경제적, 지정학적 이유로 여전히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경제적 지원을 해왔다. 따라서 마두로 정권이 무너질 경우 러시아가 남미 대륙 내 주요한 지정학적 기반뿐 아니라 수십 억 달러의 투자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미국의 간섭’

올해 1월부터 베네수엘라의 정치 위기가 심화되자 러시아는 즉시 마두로 정권 지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과이도 의장을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미국의 태도를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간주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의 무분별한 행동을 국제법의 규범과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또 다른 증거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주요 채권국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베네수엘라 경제가 치솟는 초인플레이션, 미국의 제재, 유가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두로 정권의 러시아 재정 지원 의존도가 높아졌다.

로이터통신 추정에 따르면 러시아는 2006년 이후 베네수엘라에 적어도 170억 달러(19조 원)의 대출과 신용거래를 제공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는 국영 석유회사 PDVSA를 통해 러시아에 석유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해왔다.

석유 회사

로이터에 따르면 2017년 현재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물량의 13%를 가져갔다. 일부 전문가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석유 회사 로즈네프트(Rosneft)는 베네수엘라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거래를 확보해왔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자주 방문한 이고르 세친(Igor Sechin) 로즈네프트 최고경영자(CEO)가 러시아의 베네수엘라 척후병 역할을 하고 있다. 로즈네프트는 PDVSA에 60억 달러를 대출해줬고, PDVSA는 대출금을 석유로 상환하고 있다. 로즈네프트는 또 전 세계 고객들에게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파는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베네수엘라 석유 프로젝트 중 5개 프로젝트의 소유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베네수엘라 투자는 수익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양국은 상환 기간을 2027년까지 연장하는 등 30억 달러가 넘는 베네수엘라의 채무 구조조정에 합의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붕괴 직전에 있다.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 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원유 생산량은 전년 대비 37% 감소했다. 따라서 마두로 대통령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지난해 세친 CEO가 석유 공급 지연 문제와 관련해 협상하기 위해 카라카스로 향해야 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고위 관리들로 구성된 대표단이 10월 카라카스로 가서 정부에게 위기 극복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세르게이 스토프차크(Sergei Storchak) 러시아 재무부 차관은 “베네수엘라가 부채를 상환하는 데 애를 먹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 컨설팅사인 인디펜던트 러스에너지(independent RusEnergy)의 분석가 겸 파트너인 미하일 크루티킨(Mikhail Krutikhin)은 부패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매우 불안정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러시아의 위험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크루티킨 분석가는 최근 아시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처럼 경제가 무너진 나라에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며 “베네수엘라가 대출금을 갚을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이런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이유를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고위 관료들이 공모해 투자금 일부를 빼돌리는 방식의 비리에서 찾았다.

그는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에 투자한 돈을 지키기 위해 과이도 의장이 이끄는 야당과 협력하기보다 마두로 대통령을 무조건 지원하는 이유도 부패 때문일 것”이라며 “정권이 바뀔 경우 지금까지 저질렀던 것과 같은 부패를 계속 저지르기 힘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과이도 의장은 러시아와 중국 모두를 겨냥해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가 실제로 그들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정권 교체가 러시아와 중국에 가장 유리하다”며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지키지도, 어느 누구의 투자도 보호하지 않으며, 러시아와 중국에게 좋은 거래 당사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만이 관련된 게 아닌 이상 현 시점에서 러시아가 편을 바꿀 가능성은 매우 낮다.

러시아의 교두보

크루티킨 분석가의 지적처럼 마두로 대통령을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에게는 신조의 문제다. 이 시점에서 마두로 대통령을 배신한다면 자국 국민들 눈에 러시아는 약한 나라로 보일 수 있다.

마두로 정권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 이유를 지정학 요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쿠바와 함께 마두로 정권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러시아의 주요 동맹국이다. 이 동맹의 기원은 본질적으로 냉전의 유산으로, 러시아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 등 남미 내 반미 정부들을 적극 지원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이나 마두로 대통령 같은 지도자들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 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들어왔다. 예를 들어 2008년 일어난 러시아-그루지아 간 전쟁 이후 러시아가 후원하는 분리 공화국인 아브하지아(Abkhazia)와 남오세티아(South Ossetia)를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베네수엘라였다.

전략적 차원에서 러시아는 수호이 전투기, T-72 탱크, S-300 공군 방어 시스템 등 자국 중무기를 구입할 수 있게 베네수엘라에게 수십 억 달러를 빌려주고 있다.

대신 마두로 대통령은 러시아에게 미국의 뒷마당에 군사력을 과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 왔다. 2018년 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TU-160 전략폭격기가 합동훈련을 위해 카라카스로 날아갔다. 전통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러시아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로이터는 러시아 군수업체들이 혹시 모를 폭력 쿠데타 발발 시 마두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최근 카라카스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 용병들이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지켜온 비밀 민간 군사회사인 와그너(Wagner) 소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러한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베네수엘라가 처한 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러시아가 가진 진짜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최근 PDVSA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석유 금수 조치가 발표된 후 마두로 정권의 돈줄이 끊겼다. 분석가들은 이제 베네수엘라의 운명이 군부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충성할 것인지, 충성한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럴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과이도 의장의 혁명이 성공하면 러시아는 주요 동맹국을 잃게 된다. 마두로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해도 러시아는 지정학적 기반을 지키겠지만 상당한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