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황금돼지의 해가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믿음과 달리 올해 중국 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황금돼지의 해에 출산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중산층은 성장 둔화와 예상치 못했던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규모 관세 부과를 부과하면서 시진핑 정부에 충격을 안겼다. 시장과 투자자, 소비자가 받은 충격도 컸다. 중국의 대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시 주석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나서 3개월 안에 양측의 폭넓은 이견을 좁혀야 하는 어려운 책무를 떠안게 됐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잘 풀어낸다면 시 주석은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된다고 해도 올해는 미중간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한 해가 될 수도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평화로운 경제성장을 뒤로하고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 패권을 놓고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런 새로운 환경은 올해 중국의 정치, 경제, 외교적 핵심 이슈를 지배할 전망이다.
민족주의
시 주석의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시 주석은 최근 “누구도 중국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트럼프를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이 발언은 지난해 12월 18일 덩 샤오핑에 의해 시작된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 추진 40주년 기념식 개막 연설에서 나왔다. 민족주의와 강력한 리더쉽은 국제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으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 주석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시 주석은 개혁 개방 정책이 추진된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다. 이런 그의 통치 스타일은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국가 중심 정책기조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개혁주의자들의 희망을 무너뜨렸다.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리더쉽은 중국화 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장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국면의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는 시장경제 추종자들에게 분명한 반대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지난 1989년 6월 4일 발생한 톈안먼 사태 30주년을 앞두고 입장을 달리하는 정치 집단에 대한 탄압이 지속될 전망이다. 인터넷에 대한 엄격한 검열과 강압적인 체포 등의 조치로 톈안먼 사태에 대한 언급은 계속 금기시될 것으로 보이며, 젊은 세대에게 톈안먼 사태가 잊혀질 수도 있다.
통상 문제에서 시 주석은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 중국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동시에 경기 둔화에 대응해야 한다.

중국에서 로열 패밀리로 통하는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시 주석은 우선 급격한 경기 하강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르네상스를 이끈 강력한 지도자인 시 주석은 그의 통치하에서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무너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그의 강한 민족주의적 아젠다는 최대 교역상대국인 미국과의 충돌로 이어지고, 점차 커지고 있는 중국내 시장 친화적인 여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시장 진입을 더 허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이용해 일부 경제학자들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중국에서 공기업의 역할을 줄이고 새로운 국면의 개혁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민간 부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류 허 중국 부총리는 미국과의 대타협을 추진하고 있다며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무역 분쟁의 완화와 함께 새로운 차원의 중국 경제 현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략적 논쟁은 3월 또는 미중 간의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미중 협상의 데드라인이 늦춰 진다면 더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최근 발언은 중국 경제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을 일축하고, 오히려 마오쩌둥 시대의 구호인 “자립”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GDP 성장률이 6.6%를 기록, 1990년의 3.9% 이후 28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중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중국 정부가 보다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제조업체들이 이미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흔들리는 심리를 진정시키는 게 중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무역 전쟁은 통상 문제를 넘어 안보와 외교 문제로 비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외교적 지분이 상승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남중국해와 타이완, 심지어 북한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한 보다 강경한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고, 중국 정부도 강한 맞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CFO인 멍완저우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된 후 중국 정부는 3명의 캐나다인을 체포했다..
이런 가운데 남중국해에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 근처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는 미국 해군과 중국 해군간의 사소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양국간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
시 주석의 단호한 외교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이런 민감한 문제에서 중국이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에 이런 위험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온갖 민족주의적 수사에도 시 주석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미칠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감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은 미국과의 충돌 보다 황금돼지의 해에 걸맞는 경제적 성과를 더 선호한다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