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지만…쿠웨이트에서 멈추지 않는 필리핀 가사도우미 학대

조안나 데마펠리스(당시 47세)의 시신이 그녀의 고용주 집 냉장고에서 발견된 지 15개월이 지났으나, 쿠웨이트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젤레브-알-슈유크 마을에 있는 정부가 운영하는 보호소에서 기자가 만난 필리핀 가사도우미 탈라씨(26세)는 “지옥에서 보낸 23일”을 언급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신변 보호를 위해 현재 개명한 상태인 그녀는 데마펠리스 사건으로 쿠웨이트와 필리핀 간 외교적 갈등이 빚어진 뒤 근 1년 만에 쿠웨이트로 왔다. 데마팰리스 사건이란 2016년 쿠웨이트로 와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조안나 데마팰리스란 여성이 2017년 고용주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한 끝에 토막 살해를 당한 사건이다. 그녀의 시신은 1년이 지난 2018년 2월에야 발견됐다. 이 사건 직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국민이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걸 금지시켰다. 2018년 4월 쿠웨이트 법원은 데마팰리스의 고용주인 레바논 남성과 시리아 여성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필리핀은 이 같은 판결을 환영했다. 한 달 뒤 쿠웨이트는 자국에서 일하고 있는 약 13만 9,000명의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에게 더 나은 근로 환경을 제공하기로 필리핀과 합의했다. 이 합의는 고용주들의 여권 몰수를 명시적으로 금지했고,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승인하에 고용계약을 갱신하게 함으로써 노사관계의 완전한 회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탈라에 따르면 쿠웨이트 고용주들의 집 안에선 이같이 개선된 합의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 여성이 쿠웨이트 주재 필리핀 대사관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ASIA TIMES) 12명이나 되는 쿠웨이트 대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탈라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법정근무시간을 무려 7시간이나 초과해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녀는 “그렇지만 커피와 비스킷밖에 먹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슬람교도인 그녀가 기도를 하려고 하면 쿠웨이트 고용주는 “일이 먼저”라면서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기도 시간을 놓치곤 했는데, 이는 가사 노동법에 따른 종교적 권리를 침해당한 게 된다. 탈라는 울부짖으며 “내 고용주가 나를 (돈을 주고) 샀다고 했다”면서 “나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정부가 운영하는 보호소로 몸을 피했지만, 필리핀 송환이 보류되고 있다. 그녀의 여권을 고용주가 몰수했기 때문이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  기자가 만난 살레 알 하산 쿠웨이트인권협회(Kuwait Society For Human Rights) 법률 연구원은 탈라 같은 여성들이 처한 비참한 처지에 대해 “쿠웨이트 사람들은 가사도우미에게도 자존감이 있으며, 그들을 물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걸프만과 중동 전역에는 ‘신원 보증인 제도’라는 카팔라(kafala)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에 따라 가사도우미가 일하는 국가에서 법적 지위를 유지하려면 고용주에 묶여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사도우미가 쿠웨이트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쿠웨이트 국적자의 신원 보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고용주가 신원 보증을 하는데, 신원 보증인의 동의하에 입국하면 신원 보증인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출국조차 할 수 없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 따르면 이런 시스템 때문에 자연스럽게 착취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산은 고용주가 절도, 도주, 간통 등 가족의 비밀 누설 등을 막기 위한 보험으로 불법적인 여권 몰수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여권을 빼앗는다“고 덧붙였다. 쿠웨이트인권협회(Kuwait Society For Human Rights)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주의 93%가 가사도우미의 여권을 압수해놓고 있다. 하산은 “조안나 데마펠리스가 숨진 뒤에도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필리핀 국적 노동자들이 쿠웨이트 아흐마디에서 열린 기독교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Asia Times) 쿠웨이트 주재 필리핀 대사관의 찰스론 헤르모수라 부영사는 ”현재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학대 관련 신고 건수가 줄어들긴 했다“면서도 ”일단 가사도우미가 고용주의 집에 들어가면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또한 필리핀과 쿠웨이트 사이에 맺은 노동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한 양자 회담이 아직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는 걸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