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가한 불교 대표가 공산당 대표단 가운데 서 있다. (사진: AFP)

중국 공산당은  종교를 억압하고 탄압해왔다. 그것이 공산당의 사악하고 폭력적이면서 잔혹한 목표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공산당이 결코 줄 수 없는 영적 및 공동체적 위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공산당의 억압과 탄압 강도가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공산당은 종교단체, 특히 확고한 지역적 내지 국가적 뿌리를 가진 단체를 당의 권위에 맞설 가능성이 있는 도전 세력으로 간주한다. 1989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일어난 친(親) 개혁 시위를 시작으로 중국 내 최소 200개 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일어나자, 공산당은 전국적 조직으로 커질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감시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 지도자들은 1999년 4월 25일 파룬궁(法輪功) 신도 1만에서 1만5,000여 명이 중국 권부(權府)의 상징인 자금성 옆 중난하이(中南海)를 포위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 걸 보고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파룬궁과 톈안먼

1990년대 중국 공산당이 평등과 사회적 화합보다는 부유한 ‘공산당 귀족’이 통치하는 탐욕스런 사회를 더 중요시하자 파룬궁이 일으킨 것과 유사한 시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1989년 4월 22일 톈안먼 광장에 모인 학생들 (사진: AFP)

 

파룬궁 시위가 일어난 일요일 아침, 공산당 지도자들은 두 가지 일로 깜짝 놀랐다. 첫째는 중년층 위주로 이루어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감시망을 피해 베이징에 모였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파룬궁의 내부 결속과 보안 수준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줬다.

둘째, 시위가 톈안먼 광장 대학살 사태 10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베이징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시위가 열린 것이다.

공산당은 곧바로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고, 해외 주재 중국 외교관들은 파룬궁의 영향력이 해외로 확산되지 못하게 막느라 분주했다.

공산당이 종교를 탄압하게 된 근본 원인을 역사적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공산당은 1860년대에 홍수전(洪秀全, 1812~1864년)이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에 의해 청 왕조가 무너질 뻔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기독교 사상을 내세운 홍수전을 우두머리로 하는 농민반란 앞에서 청 왕조는 무기력했고, 결국 관군이 아닌 외국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홍수전이 이끈 태평군을 진압할 수 있었다. 이후 공산당 지도자들 머릿속에는 서양 국가들이 중국을 전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독교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게 됐다.

파룬궁 사태 이후 공산당은 당과 군의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상당수의 관리들이 간단한 풍수(風水)에서부터 정통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신을 믿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로 공산당은 모든 종교를 대상으로 탄압을 강화했는데, 지난해 3월 이후 이런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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