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가 최근 발표한 언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미디어 리더들의 78%가 올해 AI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 아이스톡)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자연히 민주주의 세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때가 있었다. 충분한 데이터를 수집하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온라인에 올려놓으면 알고리즘이 나머지를 처리해주고, 세상이 사실상 알아서 돌아가는 그런 세상도.

그런데 이제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고, 대답보다 많은 의문을 선사하며, 알아서 움직이는 세상은 고상한 목표라기보다는 악몽 같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는 문제도 아니다. 기술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 기대가 문제일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디지털 혁명은 미디어 업계의 주류 사업모델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발행인과 편집자들은 기술을 맹신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메트릭스(업무 수행 결과를 보여주는 계량적 분석)를 추적했고, 데이터 저널리즘을 포용했으며, 동영상 제작팀을 만들었고, 팟캐스트 스튜디오를 열었다.

최근 들어 미디어 조직은 청중의 기호를 추적하고, 원하는 콘텐츠와 번역을 자동 생산하고, 기자들에게 속보를 알리는 인공 지능 솔루션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연례 언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미디어 리더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8%가 올해 AI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저널리즘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기술의 바탕이 되는 분산원장기술이라고 믿는다. 분산원장기술은 수많은 사적 거래 정보를 개별적 데이터 블록으로 만들고, 이를 체인처럼 차례차례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이다. 이 믿음이 맞는지는 두고볼 일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광고 중심 사업모델로부터 언론인들을 해방시켜 주려고 했던 시빌미디어컴퍼니(Civil Media Company)의 노력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기술 자체가 유발한 문제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업에게 경쟁우위를 주기 위해 기술을 이용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지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게 인수된(출혈이 나고 일자리를 줄이고 있던 때)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도 이용자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미디어 산업이나 다른 누구도 구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다른 누구’는 단지 독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최신 기술 동향을 추적해 온 미디어 산업은 기존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의 ‘번아웃'(burnout) 증세와 새로운 인재 풀 축소 문제에 점점 더 심하게 노출되고 있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미디어 리더들 중 약 60%는 팀 내 ‘번아웃’ 문제를 걱정하고 있으며, 75%는 기자 유지와 영입에 애를 먹고 있다. 루시 큉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또 다른 보고서를 보면, 특히 중간관리자들이 미디어 업계를 떠나고 있는 중이다.

놀랄 일도 아니다. 기자들은 항상 시간에 민감하고 반응하고, 압박감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뉴스 보도 환경에 부담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적어도 그들에게 안정성과 일관성을 선사해준, 그들을 고용한 언론사에 의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은 무자비하고 기술 중심적으로 변한(종종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서둘러 도입된 변화) 조직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야 한다. 이로 인해 커진 불확실성은 심지어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들마저 쫓아낼 수 있다.

분명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는 부단한 적응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기를 꺾지 않고서 필요한 조정을 하려면 사람 중심의 전략을 펴야 한다. 이것이 간단한 전략은 아니다. 기술 솔루션을 얻으려는 관리자는 훌륭한 디지털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영업팀의 조언을 듣고, 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도구를 뉴스룸에 투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상대해야 할 경우에는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이 겪는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한 뒤에 적절한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리더들부터 바뀌어야 한다. 어떤 산업에서나 직원들이 안정감과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게 리더의 핵심 역할이다. 직원들의 요구에 주목하고, 소속감과 목적감을 심어주는 조직문화를 육성해야 한다.

독자들에게도 유사한 전략을 써야 한다. 아무리 정확한 메트릭스라도 그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주는지,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청중이나 직원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이 필요한 지침을 제공해줄 수 없다, 데이터가 청중의 기호에 대한 유용한 통찰력을 줄 수 있어도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보고서 아주 다른 인상을 받고, 데이터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데이터는 콘텐츠가 늘어나면 페이지 뷰도 늘어난다고 알려줄지 모른다. 그러나 청중들이 더 집중해볼 수 있는 더 높은 품질의 기사를 원한다면, 로봇으로 생산된 콘텐츠를 산더미처럼 뿌려봤자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 개개인의 기호에 맞춘 기사를 생산할 경우 기사 클릭 수는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늘 똑같은 주제와 관점에 지루해 한다면, 개인화 서비스도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 기반 솔루션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디지털화로 인해 이룬 성공을 계기로 저널리즘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기자 수를 120명 늘려, 이제 전체 기자 수는 사상 최대인 1,600명에 도달했다.

뉴욕타임스만큼 영향력이나 디지털 수익이 없는 조직이라도 투자확보를 위해 사람 중심의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광고 중심 사업모델의 한계가 점점 더 뚜렷해지면서 많은 미디어 리더들(근 3명 중 1명)은 앞으로 재단과 비영리 단체가 언론 지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재단과 자선가들이 마음과 지갑을 열게 설득하려면 알고리즘이나 AI 소프트웨어가 아닌, 인간 사이의 연결과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잠재적 투자자들은 저널리즘이 암 연구만큼이나 숭고한 대의임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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